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감옥에 넣은 보디발 여사에 대해 복수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두 관원장의 낯빛을 살피고 섬겼습니다. 그는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창세기 40:1-4
40: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왕에게 범죄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때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온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요셉이 30세에 총리가 되었고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2년 동안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가 애굽 왕이 꿈을 꾸게 되어서 요셉이 기억나 그를 왕에게 천거할 때이니 요셉의 나이가 27세나 28세 되는 나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단순히 술을 따라 주며 시중들면서 왕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했던 관원이었습니다. 이 직을 얻으려면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야 했고 왕의 최측근으로 엄청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느헤미야도 바사 제국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시중 드는 관원으로 왕과 일대일로 대면하면서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2:1-2).
떡 굽는 관원장은 왕궁에서 빵을 만드는 일의 총책임자였습니다. 이들은 왕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담당하는 자들로서 왕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죄를 지어 감옥에 온 것을 보면 누군가 왕을 독살하려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왕은 아직 누가 독살하려 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고 감옥에 가두어 놓고 조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친위대장으로 왕궁의 감옥을 책임지고 있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은 아내의 모함으로 요셉을 자기가 관리하는 감옥, 바로 이 곳에 가두었습니다. 친위대장 보디발은 요셉에게 그 두 사람을 수종들게 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보디발의 요셉에 대한 신뢰가 여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0:5-7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두 관원장의 고민을 살핀 요셉
여러 날이 지난 후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두 사람이 하룻밤에 동시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각각 달랐습니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왜 근심의 빛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낯을 살피고 그들을 도와주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은 시키는 일만 해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의 문제를 도와주고자 물었습니다. 요즈음은 개인 사생활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인사에 대해 묻는 것은 실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문제를 혼자 간직하고 끙끙 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섬기는 자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셨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막12:30-31). 예수님은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도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특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과 같이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사1:17).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의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구원자 예수님을 증언하고 예수님 안에서 그들이 구원을 바라도록 도와주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창세기 40:8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
그들은 너무도 생생한 꿈에 뭔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징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꿈을 해석할 수 없어 고민했습니다. 요셉은 고민하는 그들에게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요셉은 매사에 하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창세기 40:9-17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 꿈을 해석해 준 요셉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에게 꿈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꿈에서 포도나무를 보았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바로의 잔이 있기에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바로에게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포도나무의 세 가지는 사흘을 말하고 바로의 잔에 포도즙을 짜서 드렸다는 것은 사흘 안에 바로가 그의 전직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요셉은 그가 전직을 회복할 때 자기를 생각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자신의 사정을 바로에게 잘 말씀드려 건져내 주시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히브리인 땅에서 끌려온 자이고 옥에 갇힐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항변했습니다.
창세기 40:16-23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
떡 굽는 관원장도 요셉의 해석을 듣고 자기의 것도 해석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는 꿈에서 흰 떡 세 광주리가 그의 머리에 있었음을 말하였습니다.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해 만든 각종 구운 음식들이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와서 그것을 먹어버렸다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세 광주리가 사흘을 상징하고 새들이 와서 그 떡을 먹었다는 것은 새들이 그의 시체를 뜯어 먹을 것이라는 의미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요셉은 거짓으로 그의 꿈을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습니다.
두 관원장의 엇갈린 운명
사흘 후가 되었는데 그 때가 바로의 생일이었습니다. 바로는 모든 신하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불러내어 머리를 들게 하였습니다.
당시 왕의 생일이 되면 죄수들을 특별사면하기도 하며 어떤 죄수는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여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떡 굽는 관원장은 서로 엇갈린 운명을 맞이하였습니다.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한 대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세우시기 위해 요셉에게 그의 뜻을 알려주시고 그의 해석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약속을 잊은 술 맡은 관원장
술 맡은 관원장은 어무 기쁜 나머지 요셉과의 약속을 잊고 말았습니다.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는 구절은 요셉의 기약 없는 감옥생활을 말해줍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해 준 것을 계기로 감옥에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어떤 특정한 때를 정해 놓고 그 때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을 때 낙심합니다. 그러나 때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방법으로 기이하고도 가장 합당하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사55:8-9).
우리가 어떤 일이 의도한 대로, 기대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약 없이 감옥에서 기다린 요셉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때를 고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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