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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다스리실 그리스도(누가복음 1:32-33)

마리아를 통해 나실 메시아는 왕으로 다스리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인간의 죄악된 피를 물려받은 자가 아니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다스리실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다릅니다. 그의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통치하고 진리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32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큰 자

마리아에게 나실 그리스도는 “큰 자”가 될 것입니다. “큰 자가 되고”는 he will be great로 ‘그가 위대한 자가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위대함의 기준은 소유이지만 예수님의 위대하심은 그의 인격에서 나옵니다. 천사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15). 그러나 예수님의 위대함에 비하면 요한의 위대함은 그 빛이 바랠 것입니다.

예수님의 위대함은 사람의 위대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함은 “주 앞에서” 위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인정해 준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그 본성과 인격이나 사명의 어느 측면으로 보나 위대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 위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감탄할 만한 인격을 갖추셨기 때문에 위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로 주심으로 구속 역사를 완성하신 분으로 업적 면에서도 위대하십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이나 재산, 명예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소유를 위대함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으면 위대하다고 합니다. 또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을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고 해도 본성이나 인격, 능력과 업적에서 그리스도를 뛰어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사람이 함께 생활하면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에 대해 놀랍고 영광스러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의 인격에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도 갈릴리로 찾아오셔서 변함없이 제자들을 아침 식사로 섬기셨습니다. 제자들은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깨닫고 영접했습니다.

정복자들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심으로 가장 위대하십니다. 구원자들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가장 위대합니다. 세상에 위대한 왕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이제 오실 메시아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아들은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으로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십니다(빌 2:6). 그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극히 높다”는 것은 가장 높은 곳으로 비유적으로 가능한 가장 높은 지위를 말합니다. “가장 높으신 분”은 하나님을 위한 완곡한 표현입니다(눅 1:35, 76; 6:35; 행 7:4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무리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이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불렀습니다(마 21:9; 막 11:10). 태어날 아기는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가랴는 태어날 그의 아들 요한과 메시아를 비교하면서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선지자”로 묘사된 반면,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로 묘사하였습니다(76). 예수님은 그 본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의 메시아 자격은 그의 아들 자격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왕위

주 하나님께서는 오실 메시아에게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혈통을 통해 나신 다윗의 육체적 후손이십니다. 다윗의 왕위는 메시아 왕국을 상징했습니다(삼하 7:13-16 ; 시 89:26–29 , 시 2:6-8).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에게 나올 다윗의 씨를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고 언약하셨습니다(삼하 7:12).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기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윗 왕국 시대의 부흥의 재현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의 성격

그리스도의 왕국은 세상 나라와 완전히 다릅니다. 그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고 그의 나라는 그의 교회 안에 있고 그의 백성의 마음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사역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 그를 영접한 자의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눅 17:21).

예수님은 유대인들에 의해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셨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그가 진짜 왕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요 18:36).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라고 함으로 그가 세상의 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덧붙여서 그의 나라의 성격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

예수님의 나라는 진리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의 백성은 진리에 속한 자들로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국경과 국토와 정부 조직이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의 나라는 군대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확산되며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고 영원할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그의 성령과 은혜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의 나라는 은혜의 왕국이고 중보의 왕국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거룩한 산 시온의 왕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통치권을 주십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계 19:16).

그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같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지 않고 무궁할 것입니다(33). 역사를 보면 수많은 제국들이 세워졌다가 망했습니다. 이 역사의 싸이클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와 부활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왕국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의 왕국은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듯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시작해서 온 세상을 뒤덮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33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왕의 통치

1. 바실레오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야곱의 집에서 왕 노릇하실 것입니다. “다스리신다”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으로 ‘바실레오’로 “왕 노릇”한다는 의미로 번역되었습니다. 야곱의 집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통치는 혈통적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1:15은 말합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2. 죄와 사망의 통치

‘바실레오’는 죄와 사망의 통치에 대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5:14).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오시기 전까지 죄와 사망이 왕 노릇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은 그 동안 흑암과 사망이 통치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흑암에 행함으로 인생의 방향을 모르고 방황하였으며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며 죽음이 주는 세력에 시달려왔습니다(사 9:2).

죄의 삯인 사망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바울은 사망의 세력에 대해 “사망의 쏘는 것”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고전 15:55-56). 사망은 우리의 마음에 독화살을 쏘아 실음실음 앓게 하다가 죽게 합니다. 죽음은 우리를 슬픔과 두려움, 무의미와 허무에 시달리게 합니다.

히브리서 2:15-16에서는 마귀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라고 하였고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지배하는 세력은 마귀로 우리는 마귀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치르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력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해방시키시고 친히 우리를 사랑과 평화, 은혜와 공의로 통치하십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사망의 통치가 끝나고 해방되어 그의 은혜가 왕 노릇하게 되어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롬 5:21).

3. 예수님과 연합한 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예수님의 통치를 받게 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되어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십니다(롬 6:12). 더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땅에서 왕 노릇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계 5:10). 이는 성도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왕 노릇한다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죄와 사망의 통치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롬 5:21). 이는 그의 주권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생명의 활동과 그의 충만함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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