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습니다. ‘구원의 뿔’은 원수를 물리치시는 강력한 왕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원수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탄의 세력에서 건지실 구원자이십니다.
누가복음 1:69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 예수님
사가랴는 “속량”이라는 단어를 통해 구약에 기초한 대속의 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구원의 뿔”이라는 말을 통해 구원의 능력을 노래합니다.
누가는 구원(소테리아)라는 단어를 그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10회나 사용했습니다(1:69, 71, 77, 19:9; 행 4:12; 13:26, 47; 16:17; 27:34). 이는 요한복음에서 1회 사용했고(요 4:22) 마태와 마가는 사용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특징적입니다.
사가랴는 구원을 “뿔”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뿔이 있는 동물의 힘은 그 힘이 “뿔”에서 나옵니다. 코뿔소나 황소의 큰 힘은 머리에 난 뿔을 이용하여 그의 대적을 물리칩니다.
구약 성경은 “뿔”이라는 단어를 구원과 연결시켜 묘사했습니다(삼하 22:3; 삼상 2:10). 사가랴는 한나의 기도에서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라는 표현을 이용하였습니다. 여기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히브리어로 ‘메시아’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사가랴와 그의 백성의 강력한 구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구원의 뿔”은 “반석”, “방패”, “피난처”라는 단어와 같이 사용하여 구원과 보호와 안전과 관계된 표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를 ‘온유하고 겸손하신’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어 하는 영혼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29).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구원은 로마의 압제로부터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적국인 로마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능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죄와 죽음을 정복할 평화의 메시아에 대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강력한 구원자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강력한 군주는 모두 죽음 앞에 무력했습니다. 그들이 다스리는 나라도 쇠락하고 사라졌습니다. 사가랴가 의미하는 구원자는 죄와 죽음과 사탄으로부터의 구원으로 영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심으로 죄로 인해 잃어버린 자된 자를 찾아 회복시키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오실 때는 백마를 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통치하실 것입니다(계 19:11, 16).
일으키셨으니
“일으키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역사 속에 나타나셨다는 은유적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중요한 사람을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오신다는 의미입니다. “일으키다”는 단어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행 3:15; 4:10). 그러므로 “구원의 뿔을 … 일으키셨으니”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뿔을 일으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 얽매이고 억눌리고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위에 군림하러 오지 않으시고 섬기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강력한 구원자가 되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되 힘으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겸손과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목자와 같은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품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목자의 존재 의미는 양에게 있습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요 10:1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한 강력한 구원자 안에 안전과 평화를 누리고 그의 사랑과 긍휼로 안위와 힘을 얻습니다.
다윗의 집
하나님은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습니다. 다윗의 집은 ‘다윗 왕가’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다윗 왕국을 다시 일으키실 왕이십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실 “한 싹”은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충만한 왕이십니다(사 11:1-2). 그는 만민의 깃발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사 11:10). 그는 다윗에게서 난 의로운 가지로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입니다(렘 23:5).
누가복음 1:70-71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예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는데 이는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성취한 것입니다.
“예로부터”라고 한 것은 이 약속은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한 후 바로 여자의 후손 가운데에서 나실 메시아를 암시하셨습니다(창 3:15). 이 말씀을 듣고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을 가진 “하와”라고 이름을 짓었는데, 그는 하와라는 이름으로 메시아의 소망을 표현했습니다(창 3:20).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3). 이는 그의 후손인 예수님을 통해 세상 만민에게 영생의 복을 주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드린 후 더 구체화되었습니다.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여기서 “네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류의 원수인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실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메시아 왕국과 메시아의 통치를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13).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감동으로 다윗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의 여러 구절 중 시편 22:14-18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16:10과 시 110:1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이 두 구절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때 인용했던 구절입니다(행 2:13; 2:34). 예수님도 자기의 부활을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막 12:36; 눅20:42-43).
거룩한 선지자의 입
사가랴가 구약의 선지자들을 “거룩한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이라는 말을 쓴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여 특별히 메시아의 예언의 말씀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선지자들은 예언의 영을 받아 거룩하게 되어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예언은 모두 ‘한 입’으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창세로부터 서로 다른 시기에 살았지만 그리스도에 관한 그들의 예언의 기록에는 모두 일치합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거룩한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쓰신 거룩히 구별하여 귀하게 쓰신 그릇들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을 읽을 때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심으실 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24:26).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말씀하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24:31).
또한 열두 제자에게 부활의 믿음을 심을 때에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예언된 메시아가 자신임을 말씀하셨을 때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24:44-45). 구약 성경에 기초하지 않는 지식과 믿음은 쉽게 무너지는 기초가 약한 믿음입니다.
원수로부터의 구원
메시아가 오셔서 하실 일은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입니다(71). 사가랴는 69절에서 “구원의 뿔”로 메시아의 구원을 묘사했고, 이제는 “원수”,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이라는 구체적인 싸움의 대상을 언급함으로 그가 하실 일을 묘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 역사를 이루신다고 할 때 구원의 대상은 “우리”이고 심판의 대상은 “원수”가 됨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의 적이 누구인 줄 알 때 승리의 방법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원수”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주관하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죄는 영혼을 대적하여 싸우고 영혼의 멸망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뱀의 후손 곧 여자의 후손은 죄의 권세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소유에 대해 항상 적의를 품어온 자입니다.
또한 죄의 결과인 죽음은 인간을 절망과 슬픔에 빠뜨렸습니다. 죽음은 강한 독화살로 인간의 폐부를 찌르고 병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멸망할 마지막 원수입니다(고전 15:26).
예수님은 이런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원수보다 더 무서운 죄와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영적인 원수는 세상의 악인들이나 권세자들보다 더 훨씬 더 치명적입니다. 세상 권세자들은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원수는 지옥 권세를 가진 사탄의 세력입니다(12:4-5).
그들은 이 세상에서 죄와 죽음이라는 형태로 사람을 괴롭힙니다. 세상 권세자들과 같은 원수들은 일시적인 역경만을 가져오지만 영적인 원수는 영원한 파멸과 고통을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 1:11). 그 이유는 자기 백성들은 영적 구원자가 아닌 정치적 구원자, 군사적 구원자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하셨는데도(행 1:3) 그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며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행 1:6).
예수님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백마를 탄 군주가 아닌, 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나귀를 타신 왕, 겸손과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는 전쟁에 사용되는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을 것입니다. 그의 통치는 이방 사람이 사는 모든 세계까지 이루어질 것입니다(슥 9:9-10).
그의 통치 방식은 전쟁이 아닌 화평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나라를 이루기 위해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물리적인 국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나라입니다(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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