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요한에게 나아온 무리들은 세 부류였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두 벌 옷을 가진 자였고, 두 번째 사람은 세리들이었으며, 세 번째 사람은 군인들이었습니다. 요한은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회개의 합당할 열매를 맺고 살 것인지를 가르쳤습니다.
누가복음 3:12-13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세리의 문제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 중에는 세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먼저 사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멸시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끔찍하게 부패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세금 징수는 로마가 직접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특히 로마에 대함 반감이 컸습니다. 그래서 로마 사람이 직접 세금을 직접 거둘 경우 반발이 크기 때문에 식민지 백성 중에 세금 징수원을 뽑아 그들이 세금을 걷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이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것은 동족을 배반하는 매국노 행위였습니다.
이 때문에 로마 정부는 그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했는데 세리들은 로마에 일정 액수만을 내도록 하고 세금 부과 액수는 세리들이 정하도록 한 것입니다. 즉 세리들은 로마와 계약을 맺은 자영업자들이었습니다. 세리들은 많은 돈을 벌고자 부과된 액수보다 더 많이 징수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사람들의 원성을 많이 샀습니다.그들은 민족의 배반자요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세리 지망생들은 그 사회의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돈에 한이 맺힌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멸시와 치욕을 대가를 치를 만큼 돈에 대해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강제로 세금을 걷기 위해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세리들을 창녀와 죄인과 같은 범주에 포함시켰고 노골적으로 따돌렸습니다. 유대인들의 세리를 향한 혐오감은 로마인들에 대한 혐오감보다 더 강렬했을 것입니다. 그리스 속담에 “모든 세리는 강도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이방인들도 세금 징수원을 얼마나 멸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금 징수원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만 세금 징수가 범죄는 아닙니다. 세금 징수는 법에 정해진 것으로 정당한 법 집행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통치자를 세우셨습니다. 통치자의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이고 우리는 이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권한을 넘어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입니다. 권력 남용은 백성을 압제하고 불공정과 이로 인한 억울함을 낳습니다. 또한 죄 없는 자의 피를 흘리고 자기를 하나님보다 높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리가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권한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심으로 세금 납부의 적법성을 인정하셨습니다(20:25).
당시에는 노예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부과되는 인두세, 소득에 부과되는 소득세(약 1퍼센트), 토지세(모든 곡물의 10분의 1, 모든 포도주와 과일의 5분의 1) 외에도 상품 운송에 대한 통행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과된 세 그 이상으로 징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리들은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부과된 세금 이상을 거두어 들임으로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남용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세리들은 세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이자로 돈을 빌려주어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였습니다. 또한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깡패들을 고용하여 사람들에게 돈을 내도록 물리적으로 위협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을 구타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들이 저지른 죄는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도 넘쳤습니다.
일부 세리들은 이런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상담을 요청한 것입니다.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요한의 대답은 세리라는 직장을 그만 두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요한이 세금 징수의 합법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세리들에게 부과된 세금 외에는 거두지 말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른 세리와 형평성도 맞추어야 합니다. 자기만 합법적으로 거두면 동료들의/ 미움을 살 것이 뻔하였습니다. 또한 해오던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풍족한 가운데 살다가 이를 포기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면 그들은 자기가 저질렀던 악한 죄의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 합니다(고후 5:17). 이전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3:14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군인들의 문제
세례 요한에게 상담을 요청한 마지막 무리는 군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탈하다”는 말은 ‘폭력을 행사하다, 갈취하다, 심하게 흔들다’는 말입니다. 폭력이나 위협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 행위를 말합니다. “거짓으로 고발하다”는 말은 ‘괴롭히다, 협박하다, 갈취하다’는 뜻으로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괴롭히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에게 나아온 군인은 로마 군인일 가능성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헤롯 안티파스가 고용한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유대인은 그들의 율법 때문에 군 복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군대 소속의 군인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세리를 돕기 위해 경찰 역할을 했던 군인이었을 것입니다.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요한은 그들에게 금전적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협박하거나 모함하지 말고 받은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합니다. 군인들은 직업 상 다른 사람에게 거칠게 대하고 잔인하기 쉽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무기와 힘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들이 한 마디 말로 무언가를 요구하면 그것은 일반 백성에게 큰 협박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군인들은 재정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고 통제하기 위해 권력의 지위를 사용하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온 군인들에게 군인을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직업적으로 주는 도덕적 유혹을 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로마 정부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받은 급료로 만족해야 합니다. 물론 그들이 받는 급료가 비록 적어 생계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 물질적, 물리적인 피해를 끼쳤다면 이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군인과 같이 권력과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자기 이익을 위해 잘못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관행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해서는 안됩니다.
이상에서 세례 요한이 언급한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요한이 언급한 첫 번째 사람은 두 벌 옷을 가진 자로서 나누어 주는 삶의 본을 제시했고, 두 번째 사람은 세리들로 부과된 것 외에는 세금을 걷지 않도록 함으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도록 했으며, 세 번째 사람은 군인들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함으로 자기 힘을 과시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삶을 청산하도록 하였습니다.
요한은 가진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다 포기하라고 하지 않았고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라고 함으로 주는 삶을 실천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기 직업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직업 윤리를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악을 피하기 위해 세상을 등지고 은둔과 고립과 수도 생활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에 살면서 빛되신 그리스도를 비추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4).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열매를 통해 그의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마 7:20).
우리는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엡 5:8-9). 신자는 빛의 자녀이므로 더 이상 어둠에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요 8:12).
하나님의 말씀은 관념적이거나 모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신학적 이론을 요구하거나 도저히 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삶의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을 강조하다보면 윤리적인 측면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는 죄에 대해 철저히 무능한 우리에게 큰 소망과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우리는 죄에 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음으로 영적으로 갓 태어난 것입니다. 태어나면 이제는 나이에 맞게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을 성화(sanc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화하는 과정에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벧후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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