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pring

성경 주석 종합, 성경 구절 묵상, 현대적 적용 주석


시험받으신 예수님(누가복음 4:1-2)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간 주린 상태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시고 마귀를 이기심으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1-2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심

예수님께서는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여기서 광야는 요단 강에서 가까운 유대의 남쪽 광야를 가리킵니다.

광야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인간 사회의 안락함과 혜택이 없는 곳이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예수님께는 최악의 장소이고 마귀에게는 가장 유리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성령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의 사명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셔야 하셨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세례 사건과 마귀의 시험 사건 사이에 예수님의 족보를 배치하였습니다. 이는 누가의 의도적인 배치였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족보에서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으로 족보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이 되셔서 첫 번째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시고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심으로 메시아로서의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완전한 하나님이셨지만 잠시 자신의 하늘에서 누렸던 특권을 비우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로마서 5:12-19는 아담의 불순종과 예수의 순종을 대조시켜 놓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사망이 모든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왕 노릇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승리하셔서 은혜와 의의 선물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충분한 이유를 제공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는 어떤 종류의 시험을 받으셨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1:12-13절에서 간략하게 기술하였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모두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 주제를 첫 번째에 배치하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누가와 다르게 성전 꼭대기를 두 번째 시험에 놓고 높은 산을 세 번째 시험에 두었습니다(마 4:1-11).

예수님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시험의 주제가 “하나님의 아들”을 주제로 한 시험이었습니다.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지위에 대한 도전했습니다(3, 9).

사탄은 그 시험의 도입과 종결에서 메시아로서의 지위에 도전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귀의 유혹과 예수님의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실 때마다 성경을 사용하셨고, 이 모든 인용문이 신명기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령 충만’은 누가가 매우 좋아하는 표현이었습니다.예수님과 마귀의 싸움은 마귀가 아닌 성령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이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성령에게 이끌려 가신 것입니다. 이 싸움의 창시자는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격을 받는 수세적인 입장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마귀를 공격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는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고 회복하기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유혹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이후로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힌 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유혹을 이기기 위해 고행을 하고 참선을 하며 선행을 베풀기도 합니다. 유혹이 많은 세상을 등지고 산 속이나 수도원에 들어가서 은둔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유혹 외에는 어떠한 것과도 싸울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마귀의 유혹은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유혹에 맞서 싸워야 극복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이 싸우신 방식대로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항할 때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을 향해 있는 우리의 눈을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께 고정시키도록 합니다(히 12:2). 예수님은 모든 신자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성령 안에서 풍성한 삶, 충만한 삶,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완전히 적셔지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을 이기심으로 우리가 연약함을 극복하고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십니다(히 4:15). 

40일 동안 주리심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실 때 40일 동안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날 수가 다하자 주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시므로 금식해도 주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주리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고통을 느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십니다(히 4:15). 그리스도도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처럼 취약하십니다. 40일은 인간이 음식 없이 견딜 수 있는 가장 긴 기간입니다.

예수님은 극한 상황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풍족한 가운데에서 시험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극한 굶주림과 척박하고 위험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는 그가 연약해서 넘어졌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극한 상황에서 시험을 받아 승리하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탄의 존재에 대한 인식

2절에서 우리는 사탄의 존재를 인식해야 함을 배웁니다. 사탄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곧 우리가 사탄이 주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탄은 욕심대로 행합니다. 사탄은 탐욕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탐심은 인간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탐심 때문에 자기가 파멸되어 가는지도 모르고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기관차처럼 멸망을 향해 달려갑니다. 수많은 순수했던 사람들이 탐욕 앞에 넘어져 추한 말년을 보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골 3:5). 또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표현했습니다(딤전 6:10).

자본주의 사회는 특히 사람의 탐욕을 부추깁니다. 사탄은 이런 분위기를 통해 영적인 것을 게을리하고 돈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과 가치관을 갖고 물질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은 또한 살인자입니다. 그의 목적은 우리에게서 생명을 빼앗고 죽이는 데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시켜 우리 영혼의 생명을 빼앗아갑니다. 사탄은 우리 생명의 도둑이며 파괴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요 10:10).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십니다(마 12:20).

사탄의 또 다른 속성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사탄은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말을 제 것처럼 하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요 8:44). 그는 거짓말로 진리를 호도합니다. 그는 최초의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결코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확신 있게 거짓말을 하였습니다(창 3:4-5).

그의 말은 마치 우리를 위한 것처럼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 달콤함 속에 우리를 죽이는 독약이 들어있습니다. 사탄은 거짓말로 우리의 분별력을 흐리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그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를 속입니다(고후 11:14). 그는 결코 무섭고 두려운 모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하고 화려하게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며 우리의 탐심을 부추기며 자기의 분수보다 부풀리게 합니다.

그는 문화와 풍습과 인기라는 가면을 쓰고 접근하여 우리를 속입니다. 그는 학문의 이론과 사상으로 우리를 속이기도 합니다(고후 10:4-5). 그는 하나님 없는 문화, 하나님 없는 사상, 문학과 영화, 드라마와 음악을 통해 죄를 미화하고 합리화하고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존중해야 할 것으로 말합니다.

사탄은 부모와 친척, 친구와 선배를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게 하고 인간의 지성과 이성을 신뢰하고 교만하게 하고 자기를 숭배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사탄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탐심을 자극하고 죽이고 파괴하며 달콤한 말로 진리를 거스르게 하는 사탄의 교묘한 유혹을 간파해야 합니다. 



댓글 남기기

About Me

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카테고리

Bible spring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