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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배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누가복음 5:1-3)

예수님은 바닷가에서 수많은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좋은 환경을 준비하시기 위해 시몬에게 그의 배에 오르기를 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의 환경을 적절히 활용하여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가르치기에 힘쓰셨습니다.

누가복음 5:1

제자로 부르신 이야기의 성경의 구성

5:1-11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람을 취하는 인생으로 부르신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습니다(10-11). 누가는 이미 4:38-39에서 시몬 베드로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들어가셔서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 그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누가는 6:12-16에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신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베드로의 부르심에 관해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함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요 1:35-42). 마태복음 4:18-22과 마가복음 1:16-20에서도 베드로를 부르신 사건을 기록하였는데 이 둘은 누가복음 5:1-11의 사건과 동일한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이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혼란스럽습니다. 누가는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준 사건을 갈릴리 바다에서 부르신 사건 이전에 배치해 놓았는데 이는 마태와 마가가 부르심 이후에 다룬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마 8:14-15; 막 1:30-21).

누가는 아마도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친 사건을 시간 순서가 아닌 주제에 기초해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관한 이야기 중 그들의 저서의 목적과 흐름 속에서 기술했을 것입니다. 복음서를 종합해 볼 때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부르심을 받은 사건은 한 번에 걸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누가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신 이야기를 기록할 때 기적적으로 물고기를 잡은 사건과 베드로의 독백을 다룬 것이 특징적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 5절을 볼 때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 때는 이른 아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네사렛 호수

오직 누가만이 갈릴리 호수를 “게네사렛”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게네사렛은 서쪽 경계에 있는 평야지역의 이름입니다. 더 오래된 이름은 “긴네렛”입니다(민 34:11; 수 19:35). 이 곳은 가버나움과 디베랴 사이에 있는 평야지역으로 매우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여러 식물들이 어우러져 분포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열매가 생산되었습니다. 게네사렛 호수의 풍부한 물을 공급받아 포도와 무화가 1년 중 10개월 동안 재배가 가능하였습니다.

게네사렛 호수의 길이는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3km가 되는데 마치 하프와 같은 모양입니다. 이 호수는 “갈릴리” 또는 “디베랴”라고 불리웠습니다. 이 호수가 워낙 커서 유대인들은 “바다”라고 호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호수는 해수면보다 210미터 아래 있었고 해발 2800미터의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물이 모인 곳이고 이 물은 요단 강으로 흘러가서 사해로 모였습니다.

이 곳에는 당시 9개의 마을이 밀집되어 있었고 인구 15,000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곳의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줄 낚시로 잡는 방법이 있었고 그물을 던지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물은 던지는 그물로 육지에서 또는 호수 가장자리의 얕은 물에서 능숙하게 물에 던져 잡았습니다. 그물 둘레에 납 알갱이로 무겁게 하여 던지면 물 속으로 가라앉아 물고기를 에워싸 잡았습니다. 다른 방법은 두 배에서 그물을 끄는 방법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실 때 회당만을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예수님을 에워쌀 때 예수님은 즉석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장소에서도 구애받지 않고 즉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복음 전파자가 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칠 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말씀은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신 6:7-9).

이른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무리를 향해 말씀을 전하시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했습니다(사 52:7). 바울도 이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복음 전파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롬 10:14-15). 

“무리가 몰려오다”에서 “몰려오다”는 press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예수님이 밀린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원했고 이로 인해 예수님은 뒷걸음질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호숫가의 물까지 밀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무리들의 영적인 갈급을 나타냅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립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말씀이 없다면 영적 기갈로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암 8:11-14). 인간의 마음은 터진 웅덩이와 같아서 세상의 것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렘 2:13).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사람을 만족시킵니다(요 4:14; 7:37-38).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으로 배불리시고 만족하게 하십니다(요 6:35). 

누가복음 5:2

그물을 씻는 데 열중하고 있는 어부들

예수님은 몰려드는 무리 때문에 물가로 밀려나셨기 때문에 강단을 바꾸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호수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보고 무리들에게 최적의 환경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환경를 구축할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셨습니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어부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그들의 아버지 세베대였습니다(마 4:21; 막 1:19).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그물을 씻는 데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5).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을 그물에서 그의 말씀으로 옮기게 하기 위해 그들의 배를 주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위한 최적의 설교 환경을 만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시기 위한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어부들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였고 예수님은 어부들을 부르심의 그물로 잡으려고 하셨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제자들이 그물을 깁고 있었다고 하였지만(마 4:21; 막1:19), 누가는 그들이 그물을 씻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신 후 조금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다고 기록했지만(마 4:18-22; 막 1:16-20), 누가는 안드레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비교할 때 서로 다르다고 해서 누가의 이 이야기와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이야기와 별개의 사건은 아닙니다. 마태와 마가는 네 제자를 부르신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누가는 베드로에게 초점을 맞추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안드레와 요한은 세례 요한의 제자였고 베드로는 그의 형제 안드레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들의 생업을 포기하고 따르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장모를 고치신 사건이 그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미 베드로의 집을 근거지로 삼아 갈릴리 사역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열두 제자를 다 부르신 상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에 이르러서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다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로 임명하시고 본격적으로 제자 양성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 전까지는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한 어부의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배는 길이가 6-9m의 작은 배라고 합니다. 어부는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입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 못했지만 품꾼을 두고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전문가들이었고 물고기가 잡히지 않더라도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는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속 세상에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을 그분의 제자의 일원이 되도록 부르십니다. 

누가복음 5:3

시몬에 배에 오르기를 청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한 배 위에 오르셨고 무리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듣도록 하시기 위한 극장의 무대 셋팅이었습니다. 뱃머리에 앉으신 예수님은 무리들보다 높은 곳에 계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었고 그의 목소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호숫가는 바닷가와 달리 파도가 없는 잔잔한 곳이었고 그의 목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질 수 있는 최적의 집회 장소였습니다. 군중들은 그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고 떠오르는 아침 해가 그들을 비추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배는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의 배였습니다. 나머지 다른 배는 야고보와 요한의 배였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오르기를 청하셨습니다. 누가는 열두 제자의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좀더 집중하여 기록했습니다. 배는 마른 땅에 있었지만 무리와의 공간을 두기 위해 배를 물 위에 뜨게 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뱃머리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는 카메라의 앵글을 게네사렛 호수, 호수 위의 두 척의 배, 시몬의 배, 시몬의 순서로 줌인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가까이 가려고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효과적으로 가르치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무대를 셋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사와 청중에게 약간의 숨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시몬의 배를 택한 목적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시몬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과 대화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안드레는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그가 메시아를 찾았다고 말했습니다(요 1:41).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초청하신 영적인 세계로 깊이 들어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들을 다시 한 번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누가복음 6장에서도 한 번 더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셨는데 이것이 이 이야기의 첫 번째 요청이었습니다. 시몬은 그물을 씻느라 바빴지만 기꺼이 그의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시몬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가 이 땅에 오신 메시아임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얕은 물가와 같이 얕은 믿음이었고 그는 더 깊은 영적인 예수님의 세계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뱃머리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

앉아서 가르치시는 것은 랍비의 관습을 좇은 것입니다(마 5:1 ; 13:1-2; 15:29; 24:3; 26:55; 막 4:1; 9:35 ; 13:3; 요 6:3; 8:2). 예수님은 랍비라고도 불리셨고 랍비의 가르침의 패턴을 따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산상수훈을 가르치실 때 경사가 있는 언덕에서 가르치셨는데 이 또한 천연의 강당이었습니다(마 5:1). 예수님은 강단으로 산 위의 경사진 장소(마 5:1), 집(눅 5:17), 광야(막 8:1, 4), 심지어 묘지(요 11:38)까지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모든 작은 어려움이나 장애물이 제거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말씀의 씨를 뿌리러 나간 자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편리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완벽한 환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뱃머리를 강단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께로부터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것들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실 것이고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아이디어는 시청각 교육을 하기에 안성맞춤일 것입니다. 완벽한 기회와 환경을 기다리느라 지체할 때 수많은 영혼들이 멸망의 길로 갈 것입니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파에 항상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거기에다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고 경계하고 권하는 지속성을 요구했습니다(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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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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