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는 평생 쌓아온 자기 경험을 뒤로 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풍성하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누가복음 5:5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한계를 인정한 시몬
예수님의 명령에 시몬은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답은 시몬이 예수님과 변론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한계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몬은 노련한 어부였지만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성실로 버티고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물고기를 잘 잡을 때도 있었고 실패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밤은 그의 성실과 기술에 한계를 드러낸 때였습니다. 그는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의 그물에는 오로지 수초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그의 성실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자신의 성실함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죽음 앞에서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영생의 문제에서 만큼은 모두가 한계를 드러내 보입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그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기 위해 피나는 내적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확신이 없어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는 율법에 성실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확신은 사라지고 심지어 극심한 두려움에 빠져 들었습니다.
베드로도 자기 성실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자기 성실 하나만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는 안드레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를 영접했고 성실하게 그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그의 성실의 한계를 몰랐습니다. 그가 진정한 깊은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가 베테랑 어부로서의 자존심을 꺽고 한계 상황에 부딪히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한계 상황에 부딪혔기 때문에 예수님의 명령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어 다시 한 번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틀에 박힌 일상을 벗어나면 큰 일 나는 줄 압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최고인 줄 착각합니다. 그 동안 해오던 경험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몬은 마음과 생각이 열려 있었고 유연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테랑 어부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전환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위대한 전환’이 필요합니다. “…잡은 것이 없지마는” 그는 예수님께 어부로서의 경험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주장을 꺽었습니다. 순종은 이처럼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꺽고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런 위대한 전환을 하셨습니다.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 예수님은 “그러나”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을 부인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처럼 자기 감정과 생각과 소원을 부인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구절을 통해 베드로가 주의 말씀을 앞세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문장 앞에 놓여 강조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생각이 있음을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의 말씀을 앞세웠습니다.
이처럼 주의 말씀을 앞세우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 말씀대로 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것이 순종입니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현재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면, 주님께서 현 상황에서 나에게 뭐라고 하시는지 알기를 원한다면, 그렇다면 성경을 열어 주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합니다(시 119:130).
많은 사람들이 어떤 지시를 받았을 때 “왜요?”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그 지시의 이유를 알고자 한다기보다 “왜 내가 해야 해요?”라는 의미로 그 지시를 따르기가 부담스럽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습관화되어 있어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씀에도 그렇게 반응하기 쉽습니다. “주님, 제가 이것을 왜 해야 해요?”, “주님, 제가 바쁜데 나중에 하면 안돼요?”, “주님, 제가 피곤한데 좀 여유가 있을 때 하면 안돼요?” 우리는 이렇게 자기의 형편을 먼저 앞세웁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음에’라고 하면서 주의 말씀을 후순위에 둡니다. 과연 이런 그가 자기 형편이 나아지고 난 후 주님의 명령을 따를까요?
그래서 우리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3). 예수님의 말씀은 논리적이지 않았습니다. 증거와 경험과 통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앞세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앞세운 또 다른 좋은 예는 로마 장교 백부장입니다. 그는 병든 종을 위해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치료해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그의 집에 가셔서 고쳐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함으로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앞세웠습니다(눅7:7). 이때 그는 말씀의 권위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5:6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순종의 결과
베드로는 단순하지만 완전한 순종을 했습니다. 그는 순종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지체된 순종은 명백히 불순종입니다. 그는 축복으로 초대하는 명령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체계에 갇혀진 한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복잡한 생각을 함으로 지체하거나 머뭇거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지체하지 않고 단순하고 과감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하여 자연 세계를 지배하시고 통제하십니다. 예수님을 물고기가 있는 곳을 잘 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물고기가 그물 안으로 들어오도록 몰아오셨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몰아 진에 쌓게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재배할 수 없는 광야에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40년간 아무 부족함이 없이 생존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입에 동전을 물고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베드로에게 말씀하심으로 자연 세계를 지배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마 17:27). 예수짐은 한계적인 상황에서 기적을 베푸셔서 그 한계와 실패를 극복하게 하시고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순종한 결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히고 배가 이를 다 담지 못해 동료의 배를 불러 도움을 청할 정도였습니다.
누가복음 5:7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풍성히 공급하시는 예수님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자 베드로는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두 배 사이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손짓을 알아볼 정도로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잡은 물고기는 두 배에 가득하게 되어 가라앉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자를 축복하시되 넘치게 축복하십니다. 주님의 역사는 항상 남는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배불리 먹이셨는데,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꽉 찰 정도였습니다(마 14:20-21; 15:37). 우리는 풍성히 공급하시는 주님을 믿고 주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는 삶을 살 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우리에게 안겨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눅 6:38).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잡은 것은 10절에서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는 것과 연결됩니다. 이는 또한 장차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 3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룸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예표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