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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제자 지망생(누가복음 9:61-62)

셋째 제자 지망생이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지망생도 먼저 자기 가족과 작별을 하게 해달라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부르심을 따라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자입니다. 

누가복음 9:61

세 번째 지망생이 주를 따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도 역시 한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올테니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주가 되시고 그는 종으로 그가 언제든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의사 표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을 “주”라고 불러도 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닙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 엘리사는 부모와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에 엘리야는 허락해 줍니다(왕상 19:19-20). 그러면 엘리사의 경우와 셋째 지망생의 경우의 차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 사람의 속마음의 차이에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가 되는 것에 더 이상 지체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밭을 갈고 있다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갈고 있던 밭은 마저 갈고 그 다음에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쟁기를 손에 바로 놓은 것을 보면 그는 즉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셋째 지망생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겠다고 먼저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는 “따르겠나이다마는”이라고 말하며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는 그 마음에 주님이 첫 번째 자리에 자리잡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 줍니다. 그는 자신의 조건과 시간표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말은 반가운 소리였지만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가족 사이에 마음이 나뉘었습니다. 

그는 롯의 아내처럼 옛 생활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싶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인간 관계와 생활 방식을 완전히 단절할 의향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9:62

예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농부는 한 손은 쟁기를 조종하고, 다른 손은 소들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박차를 가하는 긴 막대기를 쥐고 있습니다. 쟁기는 가벼우므로 쟁기가 땅에 박혀 있으려면 손잡이에 모든 체중을 싣고 앞으로 몸을 숙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뒤를 돌아본다면 곧게 뻗은 고랑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의 부르신 목적에 전적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는 전임 사역자로 살다가 여의치 않으면 사명을 떠나 세상의 일로 돌아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본적인 방향과 초점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마 6:33). 

예수님의 제자는 먹고 살기 위해 위해 세상에서 직업도 가질 수 있고 그 직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전임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부르심 대로, 평신도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부르심 대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섬길 수 있습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과 그의 나라의 일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단지 삶의 한 조각이 아니라, 전부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나라는 우리 삶의 중심이자 허브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예수님과 그의 나라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나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나라라는 목적에 복종해야 합니다. 나의 가족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을 섬기는 데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심지어 나의 여가 생활도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선물로 주심으로 열심히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먹고 마시는 여가 생활도 즐거움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적극적으로 누려야 합니다(전 5:18-20). 그런데 하나님의 일 따로, 나의 일 따로 분리하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우리 마음에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주님의 일을 부담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고전 10:31).

그리스도인들은 은퇴라는 주제에 대해 좀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퇴라는 개념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리스도인은 은퇴를 세상과 다르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직장에서 벗어나 주님의 일에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삼는 것은 감정적이고 이상적인 결정에 기초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제자 지망생은 아마도 제자 생활의 화려함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수백 명이 치료를 받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인기를 얻는 삶으로 비쳐졌습니다. 그 사람은 이런 제자 그룹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신이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대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지망생은 제자의 삶을 아버지 장사 후로 잠시 미룬 경우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의 가치가 귀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르심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의 장사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런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부모님의 죽음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 그의 삶의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비춰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의 가치를 두 번째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지망생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했지만 만일 제자의 삶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택의 여지를 열어 두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롯의 아내를 언급하시며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17:31-33).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일매일 점점 더 주님께 전진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삶을 한 번 해 보고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본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한 번 해보는 식으로 하면 반드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방법을 시도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영접한 자는 그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남아 있습니다. 되돌아 가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대개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화려하거나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그 길은 고난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자기 목숨을 잃는 삶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뒤에 영광이 있고 자기 목숨을 잃는 결과 자기 목숨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자기 몸을 불살라 드릴 것처럼 헌신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짜증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고난들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 진정한 제자의 삶입니다(9:23). 우리는 한꺼번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생각하고 한 번만 지불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자의 삶의 대가는 매일 조금씩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는 삶입니다. 제자의 삶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이 예수님께 성실한 삶입니다. 한 번에 영광의 강렬한 빛 속에 나가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앞을 향해 조금씩 꾸준히 나아가는 신실한 제자의 삶을 살기는 더 어렵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매일의 헌신은 우리의 삶과 영원한 운명을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도록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이기심과 죄에서 돌이켜 그분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나는 예수를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러나…”라고 말한다면 “그러나”를 지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유일한 길은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쟁기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달리기로 비유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 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면서 경주를 해야 합니다(히 12:1-2).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달릴 때 옆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원한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카페나 썬글라스를 끼고 파라솔이 있는 의자에 앉아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 사람들은 달리는 사람에게 엄청난 유혹이 됩니다. 그리고 자꾸 옆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면 그것이 나의 힘을 빠지게 하고 달려갈 길을 곧게 달릴 수 없습니다. 달리는 사람은 옆에 시선을 주지 않고 목표 지점을 향해 곧게 달려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다가 뒤로 물러나면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히 10:38). 믿음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에서는 작전 상 후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걷는 길이 다소 느리고 힘들더라도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과거 하나님 없이 즐겁게 살았던 추억을 떠올려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넓은 길로 편하게 가는 사람을 보면서 좁은 길에서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도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 없이 죄의 종, 두려움의 종으로 살았던 때를 떠올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그들은 길이 험하고 배가 고프자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하는 말은 우리의 죄의 본성을 일깨워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 그들은 과거의 즐거웠던 일을 기억하고 종살이의 비참한 기억은 잊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종살이는 전체적으로 불행하고 비참했습니다. 

마음이 과거에 얽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돌아보며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되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들은 왕년에 자기 잘나갔던 시절을 기억하고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바울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은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갔습니다(빌 3:13-14). 

예수님의 제자는 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거나 주저할 때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영원히 가치 있는 삶이 되려면 오늘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미지근한 헌신이 아니라 전적인 헌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좋은 것만 선택하여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모든 것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제자의 삶을 사는데 치러야 대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대가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질 상급과 비교해서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춘다면, 그를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어떤 요소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은 쟁기질을 시작하고 예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단호하게 앞을 향해 헤쳐 나가라는 것입니다. 과거를 뒤로 하고 제자도에 따르는 미래의 결실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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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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