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27-28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한 여자의 찬미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가운데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사건은 누가에게만 독특한 사건이며, 여자의 찬미는 마리아의 찬양시 ‘마그니피캇(Magnificat)’을 떠올립니다. 태와 젖은 환유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당신의 어머니는 복이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24-26절에서 경고하셨던 것이 약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갖지 못한 특권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을 가리켜 이와 같이 “당신은 복이 있습니다”라고 축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별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28).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그의 어머니가 축복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리아의 사촌 엘리사벳(1:42 )은그녀가여자 중에 복이 있으며 그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다고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메시아를 잉태하고 키운 사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그 여자의 견해를 수정해 주셨습니다.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된 영혼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여겨졌던 동정녀 마리아보다 더 행복하고 축복받은 영혼입니다.
당시 문화적 배경을 보면 어떤 어머니가 아들이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보면 이를 높이 평가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가 마리아를 높이 평가한 것은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께서 신적인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진실에 뿌리를 둔 감정의 표현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차적인 것이 근원적인 것을 대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귀신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흐름 속에서 갑자기 이 여자가 끼어들어 마리아를 찬양한 것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 여자는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 같은 아들을 두셨으므로 참으로 복된 여자이시군요”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찬양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이를 부인하지 않으셨지만, 이 여자의 생각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의 축복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맺은 자연스러운 가족 관계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단지 경건하고 그럴듯한 말만 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여 구원과 관련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과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마귀 세력에 대한 예수님의 분명한 권위는 그분이 구원자이자 주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영적 전쟁에서 어느 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순종하여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을 반대하고 사탄과 동맹을 맺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근거인 수많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과 관련된 복음서의 분명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즉 우리는 그분을 완전히 받아들이거나 완전히 거부해야 합니다. 오직 두 가지만 있고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이 두 세력 간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제시하는 확실한 증거에 기초해서 우리 주님 편에 서야 합니다.
이 여자는 감정에 붇받쳐 가볍게 토해내는 것보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알기 위한 노력은 우리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나 소문을 듣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정과 즉흥적인 생각에 기초해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위기나 감동에 기초한 찬미보다 말씀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삶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은혜의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수 있는 내적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자연인의 능력으로 말씀을 들을 수 없고 지킬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된 자만이 말씀을 듣고 이해하며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요 1:12).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락한 육신 가운데 거하며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그분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롬 8:5).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빌 2:13).
듣고 지키는 것의 의미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은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단순히 그분을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는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이 계시하는 아들에 대해 알고 믿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고 마음이 텅비어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마귀들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온전히 믿고, 그분을 주님과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임재로 가능하게 되는 순종의 길을 떠나는 사람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ㅏ고 하셨습니다. 이때 비나 비바람이 몰아치고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마 7:24-27). 우리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약 1:21-22).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는 말씀은 우리 가운데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영접하고 그 은혜를 감당하기 위해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듣고 영접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롬 10:13). 그들의 배경이 무엇인지, 그들이 높든 낮든, 부자든 가난하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들이 외적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았든, 삶의 시궁창에 빠져 있었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이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복입니다. 우리는 약점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하나님의 복입니다. 예수님은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복을 받은 자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8:15).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것은 말씀을 빼앗기지 않도록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자마자 마귀는 가까이 다가와서 우리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아 갑니다(8:12). 그러므로 빼앗기지 않도록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상상력과 눈과 생각의 방향을 말씀으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느끼는 것에서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일에서 축복을 받습니다. 축복은 느낌이 아니라 행동으로 옵니다. 우리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고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말에서 우리는 감정보다 행동이 앞서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감사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근본적인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 때 그 가운데 느껴지는 기쁨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순종의 행위는 축복을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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