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의 두 번째 비유는 잃은 드라크마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비유인 잃은 양은 밖에서 길 잃은 자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비유는 집 안에서 잃어버린 자를 다룹니다. 주인공은 한 여인인데, 그녀는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었을 때 등불을 켜고 집안을 부지런히 쓸며, 찾을 때까지 쉬지 않습니다. 이 여자에게 있어 열 드라크마는 귀중한 돈이었고 그 중 한 드라크마는 줄에 꿰어 장식품을 만들 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여자가 찾기 위해 들였던 수고는 잃은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말해줍니다. 여인의 행동은 하나님이 잃은 자를 찾으실 때의 끈질김과 열심을 보여줍니다.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는 여자
누가복음 15:8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인 목자와 잃어버린 양의 비유로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바리새인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여자를 소재로 새로운 비유로 이어 가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두 번째 비유를 말씀하실 때 반복되는 주제였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불만이 더 커지고 있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100마리 중 1마리로 100대 1의 비유이지만, 두 번째 비유는 10개의 동전 중 1개로 10대 1의 비율입니다. 첫 번째 비유의 초점은 100대 1의 비율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있었듯, 두 번째 비유의 초점도 10대 1의 비율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동전에 있습니다. 우리가 비유를 해석할 때 모든 세부 사항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비유의 핵심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집은 보통 어두웠기 때문에 그녀는 등불을 켜면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동전 열 개는 가난한 여인의 저축을 의미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동전들을 장식품으로 엮어 두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우리는 여인에게 10개의 동전의 용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여인이 동전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음이 틀림없습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의 비유는 죄인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갖고 대하는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죄인들과 세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그들이 그분께 매우 귀중하며, 그분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부지런히 찾고 계시다는 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첫 번째 이야기처럼, 이 이야기 역시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앞선 비유처럼, 이 이야기도 사회적 지위가 낮은 가난한 사람이 큰 위기에 직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값진 동전 한 닢을 잃은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목자처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백성들의 목자로서의 그들의 태만한 삶에 대해 지적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가난한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하시니 그들은 더욱 격노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목자들은 부정한 신분의 하층민으로 여겨졌고, 남성 중심적인 그 문화에서 여성들은 하찮고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어리석은 교만을 지적하신 것은 바로 그들을 향한 자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겸손한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고자 하셨습니다. 기 때문입니다(약 4:6,10).
바리새인에게 한 개의 동전은 큰 금액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가난한 과부에게 있어서는 아주 귀중한 돈이었습니다. 드라크마는 헬라의 은화로, 무게는 약 6g이었습니다. 이는 페르시아의 은화 ‘다릭’(스 2:69; 느 7:70–72)이나 로마의 은화 ‘데나리온’과 같은 가치로 추정됩니다. 신약 시대 1드라크마는 4분의 1 세겔에 해당하며, 이는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의 가치였습니다(마 20:2,9).
성경 시대에 중동 여성들은 결혼 선물로 은화 열 개를 줄에 꿰어 선물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내는 그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이 동전들은 오늘날의 결혼반지와 같았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동전을 잃어버리는 것이 남편에 대한 불륜으로 의심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여인이 결혼의 약속이 담겨 있는 동전을 잃어버린 것이므로 공황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열 개의 동전으로 된 머리띠는 여자가 결혼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동전 하나를 잃어버리면 목걸이가 망가지고 여자는 당황하게 됩니다. 여자의 머리띠를 이루는 동전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 그 목걸이는 장식품으로서 쓸모 없게 됩니다. 잃어버린 동전처럼 인간이 죄를 범하고 잃어버린 바 되었을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죄인들이 길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유익한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동전이 고리에서 빠졌을 때 여인은 그 동전을 찾기가 어려웠을까요? 당시 팔레스타인 전형적인 주택의 특징은 집안이 매우 어두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름이 40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원형 창문 하나로 집안에 빛이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닥은 마른 갈대와 같은 길쭉한 풀에 진흙을 덮어 다져 놓았습니다. 그런 바닥에서 동전을 찾는 것은 마치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습니다. 여인은 동전이 반짝이거나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바닥을 쓸었을 것입니다.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라는 구절에서 ‘등불을 켜다’, ‘집을 쓸다’, ‘찾아내다’는 세 동사는 모두 현재 시제로 지속적인 활동을 나타냅니다. 이 세 동사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과 열정을 기울인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우연에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 위해 집안에 있는 것을 뒤집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실 때, 거룩한 열정으로 온갖 것을 다 뒤집으시며 찾으십니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기쁨
누가복음 15:9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여자가 온갖 노력 끝에 드디어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았습니다. 이에 너무 기뻐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7절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15장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는 무려 6번이나 나오는 핵심 단어입니다(5,6,7,9,10,32).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잃어던 것을 되찾은 기쁨이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은 이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잃어버린 자들은 자신들이 알든 모르든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드라크마 은전은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방 안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잃은 드라크마”는 NIV에서는 my lost coin(나의 잃어버린 동전)로 되어 있는데, 이는 드라크마는 잃어버려도 여인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녀가 그 돈을 잃었다고 해서 그 돈을 소유할 권리를 잃은 것은 아닙니다. 그 돈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것이 된 것은 아닙니다(스펄전). 다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다닌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결코 잃어버린 동전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동전을 찾는 데에 이토록 간절했기 때문에 잃은 동전을 찾았을 때 벗과 이웃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며 기쁨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매우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죄 가운데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궁극적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발견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죄에 빠진 세상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은 회복되고 내면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0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0절은 7절과 같이 비유의 핵심을 말해 주는 구절로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는 하늘에서 기쁨이 있었다고 했고, 10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하나님을 모셔 선 천사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 역사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벧전 1:12 ).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인 은혜로 일어나는 구원 역사를 인해 영광을 받으시고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합니다. 그 은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확증되었고, 성령을 통해 아무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드러났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없다면 길 잃은 죄인들이 겪을 지옥의 공포를 겪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그들은 선한 목자에 의해 구원받은 자들이 영원히 거하게 될 하늘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인해 기뻐할 것을 알고 기뻐합니다. 아버지께서 택하셔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 중 단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요 10:28).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탄과 그의 악한 세력이 기뻐하고 하늘의 천사들은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죄인이 회개할 때 하나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고 그를 섬기던 천사들도 그 기쁨에 참여합니다. 구원받아 거룩하게 된 성도들은 이제 하늘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를 영원히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 회개할 때 그렇게 기뻐하였고 천사들도 기뻐하였다면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비유들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지만, 죄인들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 개개인을 위한 것입니다. 목자는 양 한 마리를 찾아 아닙니다. 여자는 한 푼의 동전을 부지런히 찾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요 10:3 ). 그는 양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는 회개가 필요한 모든 잃어버린 죄인을 인격적으로 찾아내시고 그 이름을 불러 구원하시고 돌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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