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드디어 애굽에 도착하여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바로의 특별한 배려 가운데 비옥한 땅 고센에 정착하고 왕의 가축을 치면서 목축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그의 아들 중 다섯이 왕 앞에 섰을 때 야곱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바로를 축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은 나그네 길임을 간증합니다.
창세기 46:28-30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 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가족 대표로 유다를 미리 보낸 야곱
야곱과 요셉이 재회할 때 유다를 가족의 대표로 미리 보냈습니다. 야곱이 르우벤을 보내지 않은 것을 보면 그는 이미 장남으로서의 권위 상실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는 실질적인 장남의 역할을 잘 하여 야곱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는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할 때 그를 위해 자기 목숨을 담보로하겠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설득하였습니다(43:3-10). 그는 또한 요셉이 베냐민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억류하려고 했을 때 자기가 동생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는 감동적인 설득을 하였습니다(43:18-34). 유다는 어느 모로 보나 실질적인 장남으로서 형제들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재회
야곱은 유다의 인도를 받아 고센 땅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야곱은 그의 형들에게 그들이 정착할 땅을 정해 두었다고 말했습니다(45:10). 요셉이 수레를 타고 고센에 와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아버지의 목을 어긋 맞춰 안고 재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22년만의 부자 간의 상봉이었습니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그의 눈 앞에 있으니 야곱은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고 그의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족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창세기 46:31-34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바로를 만나기 전 가족들을 준비시킨 요셉
요셉은 바로를 만나 가족들에 대해 말할 예정입니다. 그는 그의 가족들의 직업이 목자들로서 가축들을 치는 일을 하는데 그 소유를 데리고 왔다고 말할 계획입니다.
그들은 바로를 만나서 바로가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물을 때에 선조들 때부터 목축을 해왔음을 말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가증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애굽인들은 전통적으로 농경민으로 다른 직업에 대한 배타심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목민족이 거칠고 위험하다는 편견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신성시하는 동물이 있는데 이민족들이 들어와서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동물을 죽일 경우 문화적, 종교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사람을 따로 두어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면 바로가 그들을 고센 땅에 따로 살게 허락해 줄 것입니다.
고센 땅은 나일강 하류에 있는 비옥한 땅으로 이스라엘이 번성하기에 좋은 위치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침략이 없는 이 곳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번성하게 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처음부터 따로 살도록 함으로 애굽의 우상숭배 문화에 섞이지 않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애굽의 문화는 선진 문화로 용광로와 같이 다른 문화를 녹이는 힘이 있습니다. 요셉은 이런 위험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창세기 47:1-6
47: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고센 땅에 거하게 한 바로
요셉은 바로에게 가서 그의 가족들이 가축과 소유와 함께 고센 땅에 있다고 고했습니다. 요셉은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냈습니다. 바로는 그들을 영접하였고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직업을 물었습니다.
형들도 준비했던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센 땅에 따로 살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그들이 고센 땅에 살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는 바로가 통 크게 그들을 위해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고센 땅은 누구나 탐내는 비옥한 땅입니다. 이 곳을 타국인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내주는 것은 그만큼 요셉의 영향력이 막강함을 잘 나타내줍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는 그들에게 왕실의 가축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한 절묘한 섭리였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번성하면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소유를 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왕실의 가축을 치면 함부로 이스라엘의 것을 탐내어 훔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 섭리하셔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창세기 47:7-9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바로를 축복한 야곱
요셉은 자기 아버지를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했습니다. 이 때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사실 바로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온 그들을 축복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니 바로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개인으로 바로 앞에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로서 바로 앞에 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12:18, 26:4, 28:14). 야곱은 언약 백성의 대표로서 바로 앞에 섰고 창조주요 주권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형들과 입장이 다릅니다. 형들은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자세로 나아간 것이고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선지자로서 나아간 것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임을 가르친 야곱
바로는 야곱의 나이를 묻습니다. 아마 바로는 장수한 야곱의 모습을 보고 존경심에서 물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130세라고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이니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게다가 묻지도 않은 자기 인생 여정을 말했습니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은 자기 인생을 ‘나그네 길’, ‘험악한 세월’이라고 요약했습니다. 그는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나그네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돌베개를 베고 자면서 노숙하였습니다. 그는 삼촌 라반에 집에서 결혼을 대가로 14년을 무료 봉사하였습니다. 말이 봉사이지 거의 종살이 한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는 외삼촌의 속임수로 원하지 않았던 레아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집을 세우기 위해 외삼촌의 속임수에 굴하지 않고 자기 재산을 불리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외삼촌의 집을 벗어나서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달렸고 사랑하는 라헬을 잃은 슬픔을 겪었습니다. 또한 딸 디나가 강간 당한 사건을 만났고 이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가 사적인 보복을 가하여 그 땅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르우벤의 범죄를 겪었고 가장 사랑하는 요셉을 잃게 되는 사건을 만났습니다. 그의 삶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삶이었습니다.
야곱은 연장자로서 바로에게 인생에 관한 귀중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야곱은 “인생 뭐 없어. 살아보고 나니까 나그네야. 움켜쥐어봐야 험악한 세월만 보내기만 해.”라고 말하면서 다른 것은 줄 것이 없지만 선배로서 인생공부를 시켜주었습니다.
천성을 향해가는 거룩한 순례자
우리는 야곱의 말을 통해 우리 인생은 나그네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요 결국한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으면 ‘정처 없는 나그네 인생길’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가야할 종착지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의 삶은 ‘천성을 향해가는 거룩한 순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덧없는 세상 소망을 버리고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이 땅에서의 삶을 외국인과 나그네라 증언하였습니다(히11:13-16).
우리 인생이 나그네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야곱과 같이 깨어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움켜 쥐고자 하였지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움켜 쥐고자 하는 것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 소망을 주시고 영적인 눈을 뜰 수 있도록 여러 모로 훈련하시면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창세기 47:10-12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좋은 땅 라암셋
야곱은 바로를 만날 때에도 축복하였고 나올 때도 바로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가족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거주할 곳은 ‘좋은 땅 라암셋’이었습니다. 고센 땅은 나중에 라암셋으로 불리게 됩니다. 고센은 넓은 지역의 이름이고 라암셋은 성의 이름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에게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습니다. 요셉은 그 동안 못했던 효도를 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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