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원칙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시지만 비천한 자를 높이셔서 그의 영광과 이름을 나타내시는 분이심을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받는 것은 온전한 그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누가복음 1:51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교만한 자를 흩으심
마리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갈릴리 나사렛의 시골 처녀인 자신을 통해 메시아를 허락하시고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팔로 힘을 보이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힘을 발휘할 때 팔을 사용함으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할 때 하나님은 마치 팔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말했습니다(출 15:16 시 89:13; 98:1; 사 40:10 등).
아마 마리아는 “그의 팔로 힘을 보이다”는 표현을 쓸 때 이사야 53:1에서 여호와의 팔이 나타났다는 표현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의 팔이 나타났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구속 역사를 완성하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사 53:3-6). 즉 마리아는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그녀가 나을 아들을 통해 하실 구원의 역사를 이미 성취하신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교만한 자”는 당시 헤롯이나 로마의 황제와 같은 유력한 정치 지도자들이나 명예와 기득권에 집착했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이라고 하면서 교만한 자의 범위를 확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겸손한 사람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교만한 사람은 악인의 대표로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행동이나 말씨는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교만합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결코 굽히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생각하지 않고 정죄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 지적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솔직하게 그 사람의 속 마음을 내비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솔직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자기 체면이 깍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허물과 실수, 부족함을 정직하게 드러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의 행세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며 영적인 의사인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며 영적인 의사인 예수님의 치료를 간절히 바랍니다(5:31-32).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자기의 행위를 드러내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지만 겸손한 사람은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세리의 기도를 드리는 자입니다(눅 18:10-14).
누가복음 1:52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심
“권세 있는 자”는 모든 인간 통치자와 높은 지위에 있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과 계획 가운데 사람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다윗이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반면 천하를 통일한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교만하자 하루 아침에 그를 보좌에서 끌어내리셨습니다(단 4:31-33).
하나님은 몰락한 왕가의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메시아를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통해 가난하고 억눌리고 배고프고 목마른 자들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들에게 복음을 계시하시지만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십니다(10:21). 이 방법은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구속 역사에서 이 방법으로 일관되게 적용하심으로 그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족보 중에서 이방 여인 둘이 나옵니다. 라합은 멸망받을 가나안 족속으로 그는 민족적 자부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 편에 섰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녀를 심판 가운데에서 구원하시고 살몬과 결혼하여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이스라엘 회중에 들어올 수 없는 이방 여인에 과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시어머니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랐습니다. 이 둘은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이었지만 다윗의 혈통을 잇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비천하고 가난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들을 들어서 높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십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시기 위함입니다(고전 1:27-29).
누가복음 1:53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주린 자를 배불리심
마리아는 계속해서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노래합니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53; 시 107:9). 마리아는 하나님을 사람의 영혼의 갈증에 대해 만족을 주시고, 배고픔에 채워주시는 분으로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되 충족되는 것 그 이상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굶주린 자를 그의 선하심으로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구속받은 교회를 위해 그의 은혜와 영광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의 무리를 친히 먹이셨습니다(9:10-17). 예수님은 4천 명의 굶주린 무리를 보고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친히 먹이셨습니다(막 8:3).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사람의 영적인 배고픔을 채워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 되십니다(요 6:35).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심으로 “주린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6:21).
반면 예수님은 배부른 자, 즉 부요한 자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6:25).
부자를 빈 손으로 보내심
사도 바울도 부하려 하는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야고보 선생도 부한 자들이 당할 통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5: 1-3).
하나님은 부자들을 빈 손으로 보내십니다(53). 부자들은 이 땅에서 그들의 위로를 이미 받았습니다(6:24). 인간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죽을 때 세상의 것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다 남겨두고 빈 손으로 가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얻자 창고에 쌓아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2:19). 그러나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20).
사람들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영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탐욕이 영적인 눈을 가렸기 때문이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며 주린 자를 배불리시는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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