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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신 하나님(누가복음 1:54-58)

하나님은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셨습니다. 그 증거는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입니다.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의 긍휼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인 ‘헤세드’입니다.

누가복음 1:54-56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

지금까지 마리아의 찬송은 개인적인 감사의 찬송이었습니다. 이제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사랑을 찬송합니다.

1. 그 종 이스라엘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그 종 이스라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현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41:8에서 이스라엘을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종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종’ 이라고 칭합니다. “그 종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또한“종”은 단지 ‘하인’ 뿐만 아니라 ‘자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2. 도우사

여기서 “도우사”는 부정과거로 ‘이미 도우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미 그들을 도우셨습니까?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신 메시아를 이미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태중의 아이가 그 증거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도움’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오실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22:18). 예수님의 탄생은 이 약속을 성취한 것이고, 마리아는 성령께서 그녀에게 계시해 주신 대로 이것을 이해했습니다. 

3.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은 미가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미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긍휼과 인애를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미 7:19-20). 이 예언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신 방법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밟으시고 바다에 던지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대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행하신 방법은 십자가를 통한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4. 기억하시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 대해 침묵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속하시고 그의 은혜로 부르신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현재 어렵고 무력한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은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나라는 반복적으로 침략을 받았고 이제 잔인한 헤롯은 다윗의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4세기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잊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그들을 기억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아들을 보내어 자기 백성을 구속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무조건적이며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배도에도 불구하고 결코 철회될 수 없습니다(창 12:1-3 ; 15:9-21 ; 17:1-27 ). 

5. 긍휼과 기억

우리는 이 구절에서 “긍휼”과 “기억하다”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54절은 He has helped his servant Israel, in remembrance of his mercy(ESV)로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새번역)라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를 떠올립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였는데, 이 말은 “긍휼을 기억하소서”라는 뜻입니다(합 3:2).

여기서 “그의 긍휼”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인 ‘헤세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이나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언약에 기초한 변하지 않는 사랑, 그의 주권에 기초한 사랑, 위로부터 아래로 주는 일방적 사랑입니다.

미가서 7:20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라는 구절의 “인애”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인 ‘헤세드’를 말합니다. 그 사랑은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는 구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애는 우리의 모든 죄를 발로 밟으시고 깊은 바다에 던지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구원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잊으시고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그가 그가 기억하는 것은 그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연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만일 그 언약이 행위의 언약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기억하실수록 그들의 범죄할 때마다 징벌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을 처벌하는 것을 그치게 한 언약은 오직 은혜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시내산 언약이 있기 훨씬 전에 맺어졌습니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범죄하자마자 주신 언약입니다(창 3:15). 이 언약은 노아에게,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드디어 자기 아들을 보내심으로 그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근거는 그의 긍휼, 즉 언약적 사랑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석 달 후에 돌아온 마리아

마리아는 약 석 달 동안 엘리사벳과 함께 있었습니다.  누가가 이것을 언급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세례 요한이 탄생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렀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탄생에 그녀가 있었다는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1:57-58).

마리아는 3개월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가는 “집”이 어머니의 집을 가리키는지 요셉의 집을 가리키는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인지한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고 나서 바로 요셉에게 알렸는지, 아니면 엘리사벳을 3개월 만나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알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요셉이 엘리사벳을 방문한 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마태복음의 성탄 메시지는 마리아가 나사렛으로 돌아온  후의 사건이 됩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날 때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라고 말하였고 요셉은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1:20, 24). 이를 보면 마리아는 요셉의 안내를 받아 요셉의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57-58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은 엘리사벳

엘리사벳은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기한이 차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표현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에서도 같은 표현을 하였습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2:6).

천사 가브리엘은 요한의 탄생을 예언했고(13),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를 볼 때 소망 가운데 기다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신앙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소망 가운데 그를 의지하고 기다리는 자는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십니다. 그는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민 23:19).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아야 합니다(히 10:23). 비록 그의 약속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소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히 11:13). 우리가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삶을 살 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의 약속을 성취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함께 즐거워한 이웃과 친족

이웃과 친족은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임신하였을 때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라고 찬송하였습니다(눅1:25). 하나님께서 엘리사벳을 긍휼히 여기셔서 드디어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셨다”는 말은 had shown great mercy to her(ESV)로 ‘그녀에게 큰 긍휼을 보여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긍휼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긍휼히 여긴다고 하지 않으시고 긍휼의 행동을 보여주십니다.

이제 그 동안의 수치와 시련의 시간이 가고 기쁨의 시간이 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아들을 낳고 나서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라고 말하며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엘리사벳에게 불임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제거되었고 그녀는 큰 긍휼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역사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함께 즐거워하더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쁨은 교제를 요구합니다. 또한 기쁨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기쁨은 같이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권면하였습니다(롬12:15).

우리가 기쁨을 누리려면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이 성취되기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방향을 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영적인 기쁨은 모든 사람에게 감동과 은혜를 끼칩니다.

기쁨을 나누는 것은 비용이 적게 들지만 가장 강력한 은혜의 힘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공유하는 것은 엔진을 부드럽게 하는 오일과 같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은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교회의 활력을 불어 넣습니다.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이나 공감과 위로의 말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는 일을 실천하면 특별한 축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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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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