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무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오른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른손 마른 사람을 회복시키심으로 변두리 인생을 살던 그를 역사창조의 주인공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누가복음 6:10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네 손을 내밀라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기 전에 무리를 둘러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둘러보셨습니다(막 3:5).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의 질문에 대답할 기회를 주시고 그들의 반응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막 3:4). 그들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그들의 심장은 양심의 자극을 더 이상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의 질문에 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선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의 마른 손을 고쳐주시기 전에 그의 메마른 마음을 먼저 고쳐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네 손을 내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그는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수많은 사람 앞에서 그의 병든 손을 내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오그라든 마음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피하게 했습니다. 그는 그의 병든 손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마른 손을 그의 품에 감추면서 사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그는 그의 병든 손을 내미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합니다. 특히 체면을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서도 자신은 행복한 가정에서 사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부부 간에 심각한 갈등을 겪어 이혼의 위기에 있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사랑하는 사이처럼 ‘쇼윈도우’ 부부 행세를 합니다. 또한 자녀 문제로 인해 속앓이를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주변의 압박으로 인해 정신적 문제를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죄를 짓고 죄 의식에 시달려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감추고 혼자만 끌어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병든 문제를 내밀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눈초리를 의식하고 자신의 평판에 금이 갈까봐 전전긍하며 문제를 감출 때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문제의 진창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감춘 것을 내밀어 빛 가운데 드러나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내면의 병든 죄 문제를 내밀 때 우리 주님은 우리의 병든 내면을 고치십니다.
빛 가운데로 나오라
병든 손을 내미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병든 손을 내미는 것은 기도하는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병든 손을 내미는 것은 순종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병든 손을 내밀어 주님의 손을 붙잡을 때 주 예수는 자비하셔서 크신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에게 온전한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찬송가 530장).
손 마른 사람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믿음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마비되었던 오른손이 회복되어 다른 손과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조롱하고 창피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치료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사에게 병든 부분을 내보일 때 치료를 받는 것처럼 우리의 병든 곳을 보일 때 주님은 영적인 의사가 되셔서 우리를 전인격적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일 1:8-9). 악을 행하는 자는 빛으로 나아오는 것을 꺼려합니다. 이는 그의 악한 행위가 드러나 수치를 당하기 때문입니다(요 3:20).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나아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이미 십자가의 피로 수치스러움이 씻겨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이 없이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변두리 인생을 살지 않고 주님의 구원 역사의 무대의 중심에 서서 역사 창조의 주인공으로 살게 됩니다.
누가복음 6:11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노기가 가득한 종교 지도자들
예수님은 평소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삶에 대해 매우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이에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예수님은 그들의 기득권에 걸림돌이었습니다.
오른손이 말라 평생 메마르고 오그라든 삶을 산 사람을 온전하게 회복하게 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한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축하하고 같이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종교적 위선자들은 그분의 기적의 능력, 그분의 말씀의 권위, 불쌍히 여기신 그분의 목자의 마음에 감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마음이 더 완고해져서 노기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들의 노기가 가득한 모습은 하나님의 기적을 본 애굽의 바로의 반응을 떠올립니다. 애굽의 바로는 열 재앙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고 자기의 완고함을 회개하고 그 앞에 굴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앙을 겪을수록 그의 마음은 더 완고해졌습니다.
이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축하하고 감사하고 감동받아야 할 놀라운 일에 오히려 노기가 가득하여 그 마음을 더 완고하게 하였습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은 감사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노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극명한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두 가지 대조되는 반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평소에는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언급되거나 그의 놀라운 일이 일어나면 믿는 자들은 더욱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믿지 않음이 드러남으로 불편한 마음을 갖거나 자기 고집을 더욱 공고히 하여 마음이 완고해집니다.
우리가 죄 사함과 구원을 주는 복된 소식을 전할 때 소수만이 이를 영접하고 대부분은 불편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불편한 마음을 갖는 사람들 중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복음을 영접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 구원 역사는 남은 자의 역사이고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구원과 축복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노기”라는 단어는 거의 정신이 나갔을 정도의 미친 분노를 의미합니다. 반대자들은 격렬하고 비이성적인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가득했다”는 말은 채웠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주의해야 합니다. 마음을 채우는 것이 바로 나의 삶의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술로 채우게 되면 우리는 술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바울은 술 취하는 것을 방탕한 것이라고 하면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고했습니다(엡 5:18).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고 찬송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섬겨야 합니다(엡 5:19-21).
바울은 또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했습니다(롬 12:1-2). 우리는 세상의 소식을 영적 분별력을 갖고 걸러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상의 소식을 영적으로 해석해서 소화하지 않을 경우 악한 세상의 영향력이 내 마음을 채울 것이고 그것은 나를 통제하고 지배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음란하고 쾌락적인 것들로 나의 눈과 마음을 채운다면 그것은 곧 나를 지배할 것입니다. 또한 미움과 분노가 나의 마음을 채울 것입니다. 정죄와 비판 의식이 나를 채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들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것과 반대되는 것들로 그 마음을 꽉 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채울 때 성령 충만하게 되고 성령이 나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노의 감정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 않도록 경계하셨습니다. 심지어 분노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으로 연결시키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분노에 굴복하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엡 4:26-27).
분노의 원인은 교만과 이기심
우리가 분노의 원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만과 이기심이 때문일 것입니다. 교만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도 않고 내가 옳다고 화를 내며 주장하게 만듭니다. 이기심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내 방식을 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분노의 뿌리 중 하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크게 화가 나서 예수님을 낭떠러지게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눅 4:28).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고집스러운 교만과 이기심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노기는 살인의 모의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분노를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탄은 우리의 감정적 분노를 이용하여 우리를 자기의 노예로 삼아버립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특별히 노기가 가득한 사람을 찾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의논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대적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들이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사랑한다고 하였지만 그들의 분노와 살인 모의에서 그들의 열심이 빗나간 열심이고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