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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받는 자가 받을 화(누가복음 6:25-26)

예수님은 평지 설교에서 4개의 복과 4개의 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록은 서로 평행구조를 이룹니다. “배부른 자”는 “주린 자와”와 평행구조를 이루고, “웃는 자”는 “우는 자”와 평행 구조를 이룹니다. “박해를 받는 자”는 “칭찬받는 자”와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는 복과 화의 균형 잡힌 말씀을 다 들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25

“지금 배부른 자들”은 21절의 “지금 주린 자”와 대조를 이룹니다. 이 두 구절 “지금”이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과거에는 주린 자였으나 상황이 바뀌어 배부른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과거에 배부른 자였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여 현재 주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그 사람의 영적 상태가 어떠하느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날마다 살펴보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의 말씀에 이어 화의 경고를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말씀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요 13:10). 이미 목욕한 자는 예수님의 은혜로 거듭난 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거듭난 일회적인 사건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더러워진 발을 씻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발견되는 죄를 회개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주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주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지금 주린 자”는 자신의 영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자임을 인식한 자입니다. 한 순간도 주님의 말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지금 주린 자”는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이미 배부른 자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도 우리 주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것보다는 자기가 영광받고자 합니다. 주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려야 하는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영광의 박수를 받고자 합니다. 주님을 위해 조금 일해 놓고서 사람들이 칭찬을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도 모르게 배부른 자가 됩니다.

이렇게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는 우리의 주린 상태를 채우시고 만족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거부하게 됩니다. 밥을 먹은 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배가 고파지듯이 우리의 채워진 영혼은 시간이 지나면 고갈됩니다. 이를 인식하는 자는 “주린 자”이고 이를 인식하지 못한 자는 “배부른 자”입니다. “지금 주린 자”는 채워지기를 갈망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복을 받을 것이요 “지금 배부른 자”는 채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으로 영혼이 주리게 되는 화를 당하게 되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웃는 자”는 애통하며 울 것이라고 화를 선포하십니다. “지금 웃는 자”는 21절의 “지금 우는 자”와 대조를 이룹니다. “지금 우는 자”는 자기의 비참한 영적인 상태를 인식하는 자이지만, “지금 웃는 자”는 영적인 감각이 무디어지거나 없는 자를 말합니다. “지금 웃는 자”는 현세에서 물질적이고 육욕을 만족시킴으로 얻는 만족과 행복에 관심이 있는 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물질의 풍족함으로 일시적인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고갈되고 사라집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비싼 옷을 입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고 사치스런 장식을 한다고 해도 인간의 욕망은 간사하여 곧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들은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행복과 웃음은 곧 사라지고 영원한 애통과 통곡의 상태가 뒤따를 것입니다. 

21절의 “우는 자”는 자기의 죄로 인해 애통하고 슬퍼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나의 죄와 방황하는 양들로 인해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장난스럽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경박스런 삶의 자세로 인해 그들은 애통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웃음을 애통으로, 우리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약 4:9). 이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고 하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6:26

예수님은 마지막 화의 경고로 칭찬받을 때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칭찬 듣기를 좋아합니다. 교회에서도 나의 헌신과 노력이 돋보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그들이 내가 하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 맥이 빠지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아 섭섭하고 서운합니다. 이렇게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게 됩니다. 이 말은 칭찬을 많이 들으면 화가 임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헌신의 기본 마음 자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익한 종의 비유’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종은 하루종일 밭을 갈거나 양을 치고 돌아와서는 주인의 먹을 것을 준비하고 주인 먹고 마시는 동안 수종듭니다. 종은 자기가 하루종일 수고하였으니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주인이 자기를 칭찬하면서 쉬라고 할 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수고한 후에 주인으로부터 감사의 말을 듣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라고 말해야 마땅합니다(17:7-10).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구하는 자들은 스스로 무너집니다. 사람의 칭찬이 사라지면 그는 더이상 노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성취의 동기인 칭찬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화의 마지막 목록인 칭찬의 위험성을 거짓 선지자들과 연관지었습니다. 칭찬을 기대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과 같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였습니다(사 30:9-11; 렘 5:31; 23:16-22; 미 2:11).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에게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사 30:9-10).

이에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겼습니다(렘 5:31). 이런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렘 23:16).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것을 경고하셨는데 선지자들은 이를 숨기고 오히려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렘 23:17). 

예수님께서 칭찬의 화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를 거짓 선지자들과 연관지으실 때 예수님은 영적 지도자를 향한 경고를 의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말씀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지 사람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의 종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 본문의 흐름에 맞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 생각에 말씀을 이용하면 안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구절을 선택해서 가르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죄와 회개, 십자가와 고난,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에 대한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위로와 격려, 성공의 약속, 구원과 사랑, 치유와 은혜의 주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편식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합니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마찬가지로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말씀의 종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의 설교의 내용에 세상의 온갖 잡다한 지식과 정보가 주를 이루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나치게 양념을 쳐서는 안됩니다. 간이 센 양념 때문에 말씀의 본래의 맛을 잃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대반전을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울고 애통하며 울고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의 것이므로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이 일시적인 현재의 고난은 곧 영광으로 바뀔 것입니다(고후 4:17). 반면에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칭찬받는 자들에게는 화가 미칠 것입니다.

우리는 복과 화의 균형 잡힌 말씀을 통해 영원에 가치를 두고 사는 영적인 가치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축복은 현세에서 부분적인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약속이 사는 날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약속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현실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이 푸대접을 받는 삶을 살아갑니다(히 11:13).

이를 볼 때 그의 축복의 완전한 실현은 그가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궁극적인 충만함과 기쁨은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 때까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임하는 박해를 염두해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박해는 선지자들의 몫이었고, 예수님의 몫이었으며, 이제는 제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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