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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것이 풍성한 삶의 길(누가복음 6:38)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의 특징은 주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풍성한 삶의 길입니다. 우리가 주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십니다. 우리는 주는 만큼 돌려받고 심은 만큼 거두게 됩니다.

누가복음 6:38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이 주는 교훈은 ‘네가 먼저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먼저 받으면 그 다음에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주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주는 것은 일시적인 마음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주는 삶은 베풀고 섬기는 것이 내면화되고 습관화되지 않고 삶이 되지 않으면 주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라는 30절의 추가 설명입니다.

주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이 살림이 넉넉해서 주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가난 가운데에서도 돈을 모아 기근을 당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헌금했습니다(고후 8:2). 주는 삶을 사는 자들은 힘든 가운데에서 헌금하고 돕는 삶을 실천하는 것을 연습한 자들입니다. 이런 그들이 넉넉할 때에도 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때 주는 삶을 살지 못하면 넉넉해서도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주는 것이 습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용돈이 넉넉하지 못할 가운데에서도 꼬박꼬박 십일조를 드린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서도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한 달에 100만원 버는 사람이 10만원을 드리는 것을 실천할 때 한 달에 1억원을 버는 사람이 천만 원을 드리는 것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는 삶을 살 때 우리에게 갚아주시되,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십니다. 이 구절은 흥정하는 시장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곡물을 측정해서 주는 다섯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파는 사람은 용기에 곡물을 용기에 채웁니다. 그후 곡물을 꾹꾹 눌러 용기에 많이 들어가게 합니다. 다음 단계로 용기를 흔들어서 빈 틈이 없게 꽉 차도록 합니다. 넷째 단계는 용기가 넘치게 곡식을 그 위에 얹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그 곡식을 사는 사람의 옷 주머니에 부어 줍니다. 예수님은 풍성한 분량으로 주는 상인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안겨주리니”는 will be poured into your lap(NIV)으로 lap은 ‘의복의 접혀 내려뜨린 부분’을 말합니다. 헬라어로는 ‘콜포스(κόλπος, 가슴)’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입는 튜닉의 블라우스를 말하는 것으로, 천의 초과된 길이가 허리 위에 접혀져 있는 부분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입는 옷은 어깨에서 바닥까지의 길이보다 길게 재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옷을 접어서 어깨와 허리를 둘러 처리하였는데 이 때 접혀진 부분에 주머니가 형성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헤크’라는 단어로 사용되었는데 우리말로는 “품”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출 4:6; 잠 6:27; 시 79:12; 사 65:6; 렘 32:18). 이것은 물건이나 곡식을 담는 주머니 역할을 했습니다. 

기독교 사역은 주는 사역입니다.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은 아낌없이 보상을 받습니다. 농부들은 옷 앞쪽에 큰 앞치마 모양의 주머니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 씨앗을 담아 씨를 뿌렸습니다. 사람이 복음의 씨를 널리 퍼뜨릴수록 그의 추수는 더 많아집니다. 그는 후히 되어 누르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그의 옷의 품에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결국 어떤 결과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뿌린 것과 같은 분량으로 다시 되돌아 올 것입니다. 헨리 모리스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 자신이나 자기 소유를 드리는 사람은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사람은 통장 잔고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눈이 큰 사람입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면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자들이 인색합니다. 관대함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와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보상을 물질적 이득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급의 본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보상은 기도 응답, 내면의 기쁨, 성도 간의 사랑, 생명을 구원하는 기쁨, 놀라운 기적,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강,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크고 놀라운 보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독생자를 아낌 없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도 아낌 없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상하실 때 우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헤아림은 measure로 길이 또는 부피 측정 단위를 나타내거나 측정하는 막대기, 측정에 사용되는 도구를 가리킵니다(마 7:2 ; 눅 6:38). 또한 신약에서는 “분량”이라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엡 4:7).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엡 4:13).

‘우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보상의 기준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상하실 때 우리가 사용하는 척도를 사용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주는 만큼 되돌려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인색하면 하나님도 인색하십니다. 우리가 관대하면 하나님도 관대하십니다. 이 법칙은 씨 뿌리는 법칙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고린도후서 9:6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베푸는 만큼 보상해 주십니다. 그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면에서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만큼 우리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만큼 우리도 정죄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자로 재듯 엄격한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시는 척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공의의 척도이고 하나는 자비의 척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척도로 하자면 그의 진노의 심판에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의 척도로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척도로 판단하신다면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 없고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예수님과 함게 십자가에 달린 극악무도한 강도까지 미쳤습니다. 그의 자비의 척도는 끝이 없습니다. 다만 그의 용서는 우리가 그의 자비의 척도를 영접할 경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엄격한 잣대로 남을 판단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으로 엄격한 잣대로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그럽게 베푸는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베푸십니다.

우리가 영원한 보상을 원한다면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큽니다(잠 28:27).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질 것입니다(잠 11:24-25).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갈 6:7-8).

예수님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8:35). 이 말씀은 용서하면 용서를 받을 것이고 정죄하면 정죄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고 자기 이득을 얻기 위해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가져가실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모으는 자는 모아 놓은 재산이 병원비나 법적 소송에 휘말려 소송비로 나갈 것입니다. 재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 형제 간의 싸움이 일어나 가장 가까운 혈육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아니면 재산을 잃지 않을까 늘 걱정하다가 행복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이 원칙은 구제 사업 뿐만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복음 전파 사역에도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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