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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인생의 집은 짓는 사람(누가복음 6:46-49)

예수님은 말만 하기보다 삶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행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과 모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해 주심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어떠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탁류를 만날 때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지은 자는 우리 주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6:46

예수님은 질문의 형태로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행동의 변화는 말씀을 주의를 기울여 듣는 데에서 생깁니다. 그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내면화하지 않는 자들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자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가 없는 기도는 바리새인처럼 자기 자랑의 기도를 늘어놓습니다(눅 18:9-4).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무엇을 성취했고 자기 업적을 자랑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입니다(눅 8:21). 

“주여 주여”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크리스천임을 공언하는 자입니다. 그는 말할 때 “주님이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한 탄식할 때도 “주여”라고 말합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연거푸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서 그의 삶이 말씀과 다르게 행동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주여 주여”라고 주님께 외치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예수님의 경고를 잘못 해석해서 행동만 바르면 되겠지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자기 의와 성실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함으로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덧입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박해하는 자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 대해 너그럽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신자나 불신자나 구별하지 않고 임하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도 같은 믿음의 형제 자매나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똑같이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런 높은 도덕적 수준에 이르게 하는 원동력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우리는 입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우리는 “제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사랑고백을 함으로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말씀하신 신약의 헌장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항상 외적인 표현보다 우선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길이라고 부르면서 그가 가신 길을 가지 않거나, 그를 생명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생명을 덧입지 않거나, 그를 진리라고 부르면서 진리를 저버린다면 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신앙 연륜이 오래된 사람들은 쉽게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교회 운영에 관여하며 수많은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을 은근히 내세우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심지어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데 집착하여 분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교회는 영향력 있는 소수가 끌어가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고 생각하면 교회 공동체 내에 ‘작은 자’를 무시하는 영적 교만을 드러내는 일일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작은 자’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구성원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두면 안됩니다. 그래서 정확한 교리와 성경공부에 기초한 성경적 가치관을 갖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친목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람들은 주여 주여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 쉽습니다. 이 모습은 사사 시대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삿 17:5). 사사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도 섬기며 동시에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하나님께 거룩히 드린다고 하였습니다(삿 17:3).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의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했습니다(렘 23:17).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 않았고 진리를 말하는 선지자를 박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여 주여 하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경고를 의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백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은 더욱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약 1:22). 우리는 “주여 주여”라는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백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여 주여 라고 말하고 주의 말씀을 행하지 않으면 마음도, 영혼도 없이 종교적 의무를 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교회와 세상 가운데에서 이원론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교회에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세상에서는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체성이 없이 살아갑니다. 오히려 신자의 도덕성이 불신자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누가복음 6:47

예수님은 여기서 삶의 회심이 수반되지 않는 채 말로 고백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은 듣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해 경고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음에 행위를 더하면 용서받고, 칭의를 얻고,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직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에게 주는 경고이며 책망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즉 진정으로 거듭난 자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삶으로 나타내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을 의심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삶으로 나타내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소망이 그리스도께 있지 않고 세상과 자기 자신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은 너무 높아 우리가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힘으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은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약 1:22).

믿음과 순종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열매는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요한은 믿음과 순종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이 구절은 요한이 행위(순종)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생을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믿은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반드시 믿어야 하고 순종은 선택사항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예수님의 양은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믿음과 순종을 따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6:48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어떤 사람과 같다고 직유법을 사용하셔서 설명하십니다. 그의 비유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우리의 삶이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지화하여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놓는 일은 가장 중요합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공사가 가장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듭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외부에서 보면 똑같아 보입니다. 둘 다 집을 짓는 일에 착수했고, 둘 다 인내하며 집을 지었고, 둘 다 집을 완성했습니다. 이처럼 삶의 진정한 기초는 대개 숨겨져 있으며 폭풍 속에서만 입증됩니다. 암반까지 파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은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일반적으로 순종보다 훨씬 쉽습니다. 불순종은 자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자기를 절제해야 합니다. 마음을 살펴야 하고 부지런히 마음의 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회개의 쟁기로 딱딱한 마음의 밭을 갈아 엎어야 하고 마음 밭의 돌을 제거해야 하며 세상의 정욕과 염려의 가시들을 제거하면서 옥토로 가꾸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노동력과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이 집이라는 즉각적인 이익을 원합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지붕이 있었고 그의 모든 가구는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닥에서는 싱크홀이 생기고 폭우가 내려 탁류가 생기면 어느 순간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신앙 생활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나가는 것에 관심보다는 복음의 기초 위에 인생을 세우며 그 복음을 전파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들은 그들의 신상 생활의 동기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중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주님으로로부터 들을 칭찬에 관심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견고한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으로 생명을 줍니다(요 1:4; 1:14). 한나는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 쫓기면서 도망자의 생활을 할 때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집의 모퉁잇돌이 되십니다(엡 2:20).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잘 닦아 두어야 합니다.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로 그 외에는 다른 터가 없습니다(고전 3:10-11). 다른 터 위에 집을 지을 경우 모래 위의 집처럼 터가 부실하여 무너질 것입니다. 

탁류는 갑작스러운 홍수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지역에는 폭우가 쏟아지면 생기는 ‛와디’가 있었습니다. 와디는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육지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불어나 그 곳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은 휩쓸려 갈 것입니다.

탁류는 모든 죄인을 소멸시킬 하나님의 진노를 묘사한 것입니다. 또한 이 탁류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에게 닥치는 삶의 다양한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시험의 때가 오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로 변하게 됩니다. 그들은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넘어지고 예수님을 배반합니다(마 13:21; 막 4:17; 눅 8:13).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의 기초 위에 집을 짓지 않는 자들은 환난의 때나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의 삶의 기초가 흔들릴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평소 우리 인생은 잠잠하고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폭풍은 갑자기 닥치게 됩니다. 그것은 갑자기 임하여 기초가 튼튼히 놓였는지를 시험할 것입니다. 

반석은 거대한 암석으로 지진이나 탁류에 휩쓸려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반석으로 우리는 그에게 소망을 둘 수 있습니다.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은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어 그것에 걸려 넘어집니다(벧전 2:8).  하나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이유는 그가 그의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결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심으로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십니다. 

누가복음 6:49

행하는 자의 운명은 행하지 않는 자의 운명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행하는 자는 그들의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행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인 성령님을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성령께서 죄를 극복하고 선을 행할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견고한 기초가 되시며 다가올 진노의 심판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반석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영원한 파멸을 겪지 않게 됩니다(살전 1:10). 하나님은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십니다(벧전 1:3-4).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모래 위에 짓는 것은 순종한다고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순종하지 않을 때 탁류가 부딪치매 곧 무너집니다.

노아의 때에 홍수가 났을 때 방주 안에 있는 자, 즉 노아와 그의 가족과 그 안의 동물들은 안전했지만 방주 밖에 있는 자는 모두 멸망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가 불로 심판하실 때 안전하게 보호를 받지만 밖에 있는 자는 모두 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주추 없이 흙이나 모래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비교할 때 겉모양은 비슷하지만 기초가 다릅니다. 그 차이점은 폭풍이 몰아닥칠 때 드러나게 됩니다.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 그들은 같이 자라서 서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의 때에 곡식과 가라지가 구분됩니다(마 13:24-30). 이처럼 겉으로 볼 때 참된 신자와 거짓된 신자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의 탁류나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탁류가 올 때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복음의 터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우는 사람은 심판의 폭풍우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요 5:24).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므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요일 4:17).

인생의 집의 기초인 반석과 모래의 차이점은 지혜로운 것과 어리석은 것의 차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인생의 결과를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순종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갑작스럽고 최종적인 멸망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기 위해서 밟아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개인적인 일대일 관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는 사람들은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마 7:23).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성장함을 의미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부인하고 세상의 삶의 방식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머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동기와 태도를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성경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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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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