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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역의 성격(누가복음 7:21-23)

예수님은 요한의 의심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에게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그의 질문에 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글을 통해 그의 사역의 성격이 어떠한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메시아관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 잡아 주시고 그가 실족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21

“마침 그 때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메시아인지에 대해 의심하여 그의 제자 둘을 보내어 질문한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 둘이 왔을 때 질병과 고통과 악귀 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맹인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를 보게 한 것은 “행동이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는 속담을 증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잡한 신학적인 논증으로 그의 사역을 설명하기보다 실제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그의 메시아 사역의 성격을 말씀하고자 하셨습니다. 그의 고치는 사역은 그 어떤 말씀에 있는 대답보다 더욱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말을 말처럼 직접 보게 함으로 세례 요한에게 인상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7:22

예수님은 그를 찾아온 요한의 두 제자에게 그가 하신 일을 보여주신 후 요한에게 전할 메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이사야 35:5-6과 26:19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가 하실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사야 61:1-2을 인용하여 메시아가 하실 일을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7-18). 이 구절 또한 메시아가 오셔서 하실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메시아가 오시면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이 예언한 일을 실제로 행하심으로 그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마침 그 때에 예수님은 요한의 두 제자가 보는 앞에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후 예수님은 그들이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요한에게 전달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구약을 잘 알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요한은 현실 문제에 집착하여 구약이 말하는 바를 잠시 놓친 것 같습니다. 그가 기대하는 바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장차 오실 메시아라고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메시아가 하실 일을 직접 행하심으로 대답을 대신하셨습니다. 

요한이 기대했던 대답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군대를 소집하여 사탄의 왕국인 로마 정부를 전복시키고 헤롯의 궁을 부수며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임하여 세상의 모든 악이 제거될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심으로 죽음의 고통이 사라지고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며 죄의 세력과 죽음의 권세가 사로잡은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있음을 알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가서 요한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 있다라고 전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고 그 나라는 복음이 전파되고 그 복음을 영접한 자들의 내면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자들의 모임인 교회에서 그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사탄의 나라와 전쟁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 그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열심히 복음을 전파함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영적인 맹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죄와 죽음의 권세로 일어나 걷지 못하던 사람이 사슴과 같이 뛰고 죄의 나병에 걸려 양심이 마비되고 흉측하게 되어 양심이 더러워진 자가 십자가 죄 씻음으로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으로 회복되며 영적으로 귀먹은 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소통하며 영적으로 가난하여 결핍된 삶을 산 자들에게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악화되어 가는 것 같고 우리의 복음 전파의 노력이 헛된 것 같이 보이지만 이런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복음 전파를 통해 그의 나라를 이루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누가복음 7:23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의심의 질문을 책망하지 않으셨고 그에게 대답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긴 설명보다 요한이 보낸 두 제자 앞에서 병자를 고치심으로 이사야가 예언한 오실 메시아가 하실 일을 그대로 행하심으로 가장 정확하고 명확한 답변을 내놓으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족하다(σκανδαλίζω; 스칸달리조)”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넘어지게 하다, 범죄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 동사는 걸려 넘어지게 하다, 불쾌감을 주다, 떨어지다, 올바른 길에서 멀어질 수 있는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걸려 넘어지는 경험을 말합니다. 

이 동사가 수동태로 사용될 때 ‘비틀거리다’ 또는 ‘기분을 상하게 하다’를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스칸달리조’로 사용된 29번 중 15번은 수동태로 사용되었는데 ‘배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마 13:57, 15:12, 막 6:3, 눅 7:23은 예외). 

바리새인과 같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사용될 때는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마 13:57, 15:12).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NRSV에서는 take offense로 ‘화를 내다’로 번역하였고 ESV와 KJV는 is offended로 ‘마음이 상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분노하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는 곧 그를 버리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우리에게도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 주십니다. 의심은 크게 나누어 긍정적인 의심과 부정적인 의심으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심은 반대를 위한 의심이고 긍정적인 의심은 더 깊은 지식으로 가기 위한 의심입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예수님이 우리가 무릎을 꿇고 굴복할 정도로 많은 증거를 제시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갈망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결코 우리가 그분과 관계를 맺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얀시(Yancey)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자기를 계시하시는 분인 동시에 자기를 숨기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믿고자 한다면 충분한 정보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시청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의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는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단순히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의심을 어찌할 수 없으나 그 의심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면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 때문에 떨어져 나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가 생각한 것과 맞지 않는 일을 하실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그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그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입니다(사 55:8-9). 

우리는 마음의 의심에서 나오는 질문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 질문이 우리의 열정을 마비시키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거나 “의심을 없애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 의심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조심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질문이 사탄의 덫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알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은 하나님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긍정적 의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질문과 의심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답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질문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과 길이 나의 것과 다르고 더 높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실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 “저는 확실한 답을 얻었으면 좋겠다”라고 우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심이 미제로 남아 있더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그의 사랑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는 확신입니다(롬 8:32).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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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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