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pring

성경 주석 종합, 성경 구절 묵상, 현대적 적용 주석


두 빚진 자의 비유(누가복음 7:39-42)

바리새인 시몬은 많은 죄를 지은 여인을 영접한 예수님을 마음 속으로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몬의 의로운 마음을 두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깨우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죄로 인해 빚진 상태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값없이 우리의 죄의 빚을 다 탕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의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7:39

예수님을 청한 바리새인은 여인의 비상식적인 장면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곧장 이 여인의 행동을 용납한 예수님께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존경하였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라는 말은 장래 일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아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의 비밀을 읽는 자로 인정하였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선지자로 보내심을 받았더라면 그 여자의 과거를 아시고 책망하셨을 줄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외모로 봐도 이 여자가 소문난 죄인인 줄 아는데 그녀가 향유를 붓고 그녀의 머리털로 발을 씻는 것을 용납한 것을 보았을 때 마음에 잔뜩 불만을 가졌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행동이 부담스럽고 부정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도 당연히 이 여인을 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존중한다면 장로들의 전통이 지시하는 대로 즉시 그녀를 책망하며 쫓아냈을 것인데 그녀를 용납한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시몬은 자기 체면 때문에 이런 생각을 입 바깥으로 내지 않았지만 그의 불만은 그의 얼굴에 그대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이 마음이 상하고 가난한 자에게 임하며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을 주심으로 위로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그 여인의 회개를 기뻐하는 대신에 그 여자가 이전의 악한 생활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과거의 죄에만 집착하였습니다.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계급적인 생각과 엘리트 의식에 갇힌 눈 먼 자였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자는 편견에 사로잡히고 그 편견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상하게 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와 같은 부류에 속하지 않는 자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교만하고 완고한 자였습니다. 

그는 은혜로우신 구주께서 그의 핏값으로 사심으로 거저 주시는 용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그의 생각에 동조해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의 교제를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19:10). 

누가복음 7:40

시몬은 그의 불만을 말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몬이 마음속으로 말한 것을 알고 대답하셨니다. 시몬은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라고 조건문을 달아 마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구절은 시몬이 예수를 선지자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이 바리새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라고 하실 때 그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예수님에게서 배우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다 읽으시고 대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마음속으로 불평의 말을 한다면 그 마음을 읽으시고 교훈하시기 위해 대답하십니다. 만일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그에게 믿음과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다면 그는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 대답하십니다. 

누가복음 7:41

예수님은 두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시몬을 교훈하고자 하셨습니다. 비유에서 고리대금업자에게 빚진 사람이 두 사람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졌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졌습니다 . 고리대금업자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빚 주는 사람”는 헬라어로 ‘크레오필레테스’로 누가복음 16:5과 여기서만 사용되었고, “빚진 자”는 헬라어로 ‘다니스테스(danistēs)’로 이것도 여기서만 사용된 단어입니다. 

당시에는 상업적 목적의 대출보다는 가난해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빚을 졌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빚을 진 자에게 이자를 받거나 생활 필수품을 전당 잡지 못하게 규정해 놓았습니다(출 22:25; 신 24:6,17; 욥 24:3).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로마의 영향으로 이런 자비의 실천이 사라지고 채무자에 대한 처우가 가혹해졌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의 품삯으로 여겨졌습니다. 1데나리온은 대략 하루 품삯에 해당하므로 500데나리온은 2년치 임금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고, 50데나리온은 거의 2개월치 임금입니다. 1데나리온은 당시 로마 군인이 받는 급여 수준 정도였으므로 가난한 이들이 혼자서 갚기에는 불가능한 수준의 빚이었습니다. 빚을 연체하게 되면 이자가 불어나고 그들의 빚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 채무자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비유와 비슷한 비유로 마태복음 18:23-34에서는 한 사람은 일만 달란트 빚을 졌고 다른 한 사람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것으로 나옵니다. 이 두 금액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차이이지만 누가복음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또한 빚을 진 자들이 돈을 빌린 대상이 다릅니다. 백 데나리온을 빌린 채무자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게 돈을 빌린 것입니다. 

“채권자”는 하나님으로,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생명의 보존, 생명의 모든 자비를 그분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50데나리온 빚진 자는 상대적으로 죄를 덜 지은 자를 말하는 것으로 바리새인을 말하고 500데나리온을 빚진 자는 상대적으로 큰 죄를 지은 자로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를 말합니다. 

이 빚을 진 두 사람은 그들의 능력으로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500데나리온을 빚진 자나 50데나리온을 빚진 자는 모두 빚진 자입니다. 즉 큰 죄인이나 작은 죄인이나 모두 빚진 자입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지은 죄이고, 그분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죽을 수밖에 없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고, 심지어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돈을 지불할 가능성이 없는 자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롬 3:10). 죄의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완전한 부패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행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절망적으로 파산했고 둘 다 무기력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채권자는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그들 둘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고, 둘 다 그의 눈에는 똑같이 지불 불능자임을 선언합니다. 채권자는 그들이 갚을 수 없게 되자 그 둘의 빚을 탕감해 줌으로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빚을 진 상태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채무자는 채권자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값없는 은혜와 자비와 연민으로 인해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탕감해 주었다는 것은 탕감한 액수만큼 누군가 손해를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희생시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죄값을 치를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의 빚을 탕감해 주신다는 것은 그가 친히 그 빚을 짊어 지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빚을 갚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귀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죄의 빚을 탕감받은 대신 은혜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라고 고백했습니다(롬 1:14). 그는 하나님을 몰랐을 때 영적 무지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한 자였고 하나님의 원수된 자였습니다(고전 15:9). 그는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까지 가서 그리스인들을 남녀를 막론하고 체포하고자 하였습니다(행 9:1). 이런 그가 다메섹에서 빛으로 임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사랑의 빛에 고꾸라졌습니다(행 9:3).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지게 되었고 이 빚을 갚고자 다른 어떤 사도보다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고전 15:10).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빚진 것을 세상 만민에게 갚고자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값없이 거저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죄의 처벌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죄의 빚을 탕감받았다고 우리의 빚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처벌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나 여전히 그의 사랑과 은혜에 빚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은혜를 받고도 내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고 주님께 쓰임받을 자격이 있어서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인 줄 착각합니다.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를 내세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죄를 범합니다. 

돈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은 투옥되거나 일시적으로 노예가 되거나 특정 물건이 압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채권자는 율법의 조항을 넘어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둘 다 탕감해 주었더니”라는 구절은 NKJV에서는 he freely forgave them both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무 대가 없이’, ‘값없이’ 탕감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freely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비유에 나오는 채권자는 다른 채권자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탕감에 대한 대가로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죄 용서함을 받고 죄의 빚을 탕감받은 것은 온전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겨자씨 한 알이라도 그의 구원에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 만일 0.01%라도 인간의 노력을 요구했다면 인간은 자기 공로로 구원받을 자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렘 17:9). 인간은 죄로 인해 완전한 파산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파산 상태에 있는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는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관한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의 철저한 타락과 구원을 위한 우리 주님의 주권적 사랑과 은혜에 대한 지식을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두 사람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유의 두 사람은 둘 다 죄인이었지만 한 사람은 자기가 죄인임을 알았고 다른 한 사람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특히 시몬처럼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의 의로움을 부각시키고자 할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실제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고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는 사람임을 인식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넘어선 죄는 없습니다(요일 1:9).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들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을수록 사랑할 능력이 더 커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용서받아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댓글 남기기

About Me

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카테고리

Bible spring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