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pring

성경 주석 종합, 성경 구절 묵상, 현대적 적용 주석


바위와 같은 마음 밭(누가복음 8:13)

바위에 떨어진 말씀의 씨는 싹을 틔우지만, 뿌리가 없어 금세 말라버립니다. 바위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지만,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겪을 때 배반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만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해 버립니다.

누가복음 8:13

“바위”는 표면이 암석이나 돌로 이루어진 밭이 아니라, 표면 아래에 석회석과 같은 단단한 암석이 있고 그 위에 흙으로 덮여 있는 곳을 말합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습니다. 오히려 처음 믿을 때 그들의 변화는 극적이고 놀라워 보입니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좋은 믿음의 동역자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런 그가 교회에 나타나지 않아 만나보면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앙 생활을 포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해서 힘든 것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고 현실을 접하고 나니까 그 동안 집회의 은혜로운 분위기에 휩쓸려 감정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삶이 고난의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알고 세상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습니다. 

바위와 같은 마음 밭은 피상적이고 감정적이며 쉽게 관심을 갖고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지만 깊은 확신이 없는 얕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다가 눈물이 마르면 시험을 받으면서 넘어지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기쁨은 일시적일 뿐이고 곧 흔들리게 됩니다. 

눈물을 포함한 감정적 반응은 항상 진실은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눈물이 ‘악어의 눈물’임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에 대해 지적인 동의만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감정적 반응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들은 말씀과 찬양을 통해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 생활은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환희에 빠지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문제 자체에 얽매여 현실에 금새 동화됩니다. 그들은 그들의 실제 삶에서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예배 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롬 12:1).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예배를 드리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들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후 성화의 과정을 무시합니다. 이런 그들에게 시련이 닥치면 믿음의 뿌리가 약해서 배반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복 주셔서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예기치 않던 사고를 당해 불행을 겪을 수도 있고,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혀 많은 고생을 할 수도 있고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아 마음이 슬프고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겪는 ‘시련’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뿌리가 약한 사람은 예수님 믿으면 좋은 일만 생기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고 말하며 믿음의 길에서 떠나는 안타까운 일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 거할 때 깊고 지속적인 기쁨은 있지만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람이 없고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할 때가 있지만 폭풍우가 불어 배가 요동치고 침몰 위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다의 표면은 크게 요동하지만 바다 밑에는 흔들리거나 방향을 바꾸지 않는 저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요란한 폭풍우 가운데에서 면면히 흐르는 저류와 같은 깊은 곳의 기쁨입니다. 감정이 아닌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자들은 바다의 저류와 같은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는 기쁨을 유지합니다. 

우리는 감정의 존재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긴장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예민한 감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이런 외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낙심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그 영혼의 닻을 내린 자와 같아서 그 어떤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자는 세상의 풍파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습니다(히 2:1). 

어떤 사람은 복음을 영접하고 잠시 동안 신자로서 살다가 어떤 계기로 배반을 하는데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동안 믿는다고 모두 신자는 아닙니다. 진정한 신자라고 하면 ‘잠시 동안’만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자는 처음부터 믿지 않는 자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않는 자였습니다. 요한은 이런 그에 대해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라고 코멘트하였습니다. 그의 제자 생활의 목적은 돈이었습니다. 

그러면 “잠깐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진실로 믿었다가 구원을 잃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요 10:28). 

신앙 생활을 하다 “나는 과연 구원받았는가?”라고 심각한 질문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바닥 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자의 믿음은 결코 제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그가 제로에 가까이 있는 동안 처절하게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결코 완전히 실패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돌밭과 같은 마음 밭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믿었다가 구원을 잃는 경우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얕은 흙 위에 떨어진 씨앗이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말씀에 ‘뿌리 내리는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시련의 의미

신앙 생활을 하면 반드시 시련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정말 ‘꽃길’만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자의 시련은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히브리서 저자도 징계(훈련)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훈련)하심으로 친아들과 같이 대하십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인데, 만일 징계가 없다면 그는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닙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합니다.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서 훈련하고자 하실 때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히 12:5-13)? 

사도행전을 보면 믿음의 뿌리가 없어 잠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 경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가 요한은 1차 전도여행 때 인내하지 못하고 전도여행팀에서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행 13:13). 그러나 후에 그는 사도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딤후 4:11). 우리는 마가 요한과 같은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을 알고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계속 뿌리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6에서 “시련”은 “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태양은 식물의 광합성이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식물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면 태양열에 의해 말라 죽게 됩니다. 식물이 말라 죽은 것은 겉으로 볼 때 태양 때문인데 실제로는 태양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는 비바람을 이기지 못합니다. 지나친 보호는 식물을 약하게 만듭니다. 시련을 피한다고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련과 문제를 통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합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을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였습니다(약 1:2). 베드로는 우리의 믿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닥치는 불 같은 시련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했습니다(벧전 4:12). 지나친 보호가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자생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다니는 것이 재미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재미로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사람 사이에서 기분이 상해서 안 다닌다고 합니다. 또한 자기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겨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둡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설교에서 어떤 특정한 내용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 다니지 않습니다. 또한 목사님의 설교에서 헌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같아서 부담을 느껴 다니지 않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는 것은 좋은데 자질구레하게 섬기는 일을 요구받아 부담을 느껴서 교회에서 멀어집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분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신앙, 진득하게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쇼핑하듯이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니는 신앙,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귀가 얇은 신앙, 말씀을 고리타분하게 여기고 뭔가 새로운 것을 기웃거리는 신앙은 바로 바위 밭과 같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신앙, 즉 우직한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님 가신 길을 뚜벅뚜벅 따라가는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않는, 깊이 뿌리내리라는 신앙을 기뻐하십니다(찬송가 325장).

많은 교회가 부흥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꽉 채우고 뜨거운 신앙으로 모이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말씀을 택할 때도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말씀을 선택합니다. 죄와 심판, 자기 부인과 십자가, 고난과 희생, 헌신과 봉사 등의 메시지보다 성공과 축복, 형통과 번영, 위로와 격려, 치료와 회복에 관한 메시지로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아오도록 분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의 구미에 맞는 말씀을 쇼핑하는 백화점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선포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듣기 좋은 메시지도 있고 듣기에 거북한 메시지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해서는 안 됩니다. 씹기에 부드러운 음식과 같은 메시지뿐 아니라 딱딱하고 질긴 음식과 같은 메시지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듣기 좋은 것만 선택해서 들어서는 안 되고 본문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고 하나님이 내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신앙의 요소 중 감정은 가장 얕은 부분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 곧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에 근거한다면 그것은 얕은 뿌리의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특별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않더라도 사실에 근거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정은 나의 삶에서 가장 얕은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얕은 부분에서 가장 깊은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가장 심오한 사역입니다. 반면 우리의 감정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얕은 부분입니다. 



댓글 남기기

About Me

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카테고리

Bible spring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