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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무엇이냐?(누가복음 8:29-30)

그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사람들이 묶어놓은 쇠사슬과 고랑을 끊고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참한 삶을 사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사 그 사람에게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자 그 사람은 “군대”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군대와 같은 많은 귀신이 들려있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8:29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그 앞에 엎드려 소리친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명하여 그 사람에게 나오라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자 귀신은 바로 반응하였습니다. 누가는 그가 귀신에 들린 망가진 삶에 대해 서술합니다. 귀신은 “가끔” 그 사람을 붙잡았습니다. 여기서 “가끔”은 시간적으로 사이가 뜨게 드문드문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many times (NASB95; NIV; NRSV; NASB2020) 또는 many a time (ESV; RSV)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27절을 보면 그는  “오래” 옷을 입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의 끔찍한 상태의 지속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에서 “붙잡았다”는 과거완료 능동태이고 “매어 지켰으되”와 “몰려”는 미완료 수동태입니다. 이는 귀신이 그 사람을 한번 꽉 붙잡았을 때 그는 “매이고”, “몰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즉 귀신이 그 사람을 붙들자 그는 점점 그 삶이 망가져갔고 지금은 완전히 폐인이 된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그를 가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귀신의 힘은 쇠사슬과 고랑을 끊게 하는 괴력을 발휘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귀신에게 몰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귀신이 그를 지배하고 귀신이 조종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더러운 귀신을 명하여 그 사람에게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귀신의 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떻게 귀신 들린 삶을 살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아마도 육체적 질병의 원인으로 그것 때문에 귀신들려 정신적 장애를 일으켰는지 모릅니다. 그는 사람을 피하고, 무덤에 살고, 옷을 입지 않고, 돌로 자기 몸에 상처를 냈습니다(막 5:5). 그는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습니다. 광야는 뜨거운 모래밭이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지역으로 황폐한 곳이고 외로운 곳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없는 곳에 살았습니다. 이를 볼 때 그가 귀신에 들린 이유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 물질적인 가치관과 이기심으로 인해 이렇게 내버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파괴적인 동물로 변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를 세우고 서로 아끼며 보호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히 10:24-25). 우리는 형제 중에 미혹되어 미혹된 길을 가는 자가 있다면 그를 돌아서게 하고자 해야 할 것이고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약 5:19-20). 물론 이는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권능이 임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돌보는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을 혼자 내버려두는 것은 그가 마귀에게 가장 취약한 상태로 먹잇감으로 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는 단순한 불균형 이상의 증상을 보였습니다. 그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사람들의 물리적 구속을 떨쳐버리고 나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위협이 되었습니다. 이를 볼 때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를 치료하고 구원을 수 없고 귀신의 세력을 이길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둘 수 밖에 없었고 그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은 이런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도와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그를 두려워하여 피하였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묶어두고 내버려 두었는데 예수님은 그를 묶고 있는 악령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그 방법은 그의 영적 권세로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구원하실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악령에 시달리는 인간을 구원하고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적 희생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를 근본적으로 죄와 사탄의 세력에서 건질 수 없습니다(롬 5:8). 

이 절에서 누가는 귀신을 “더러운 귀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의 영혼과 정신과 삶을 망가뜨려서 추하고 더럽게 하는 세력입니다. 사탄의 목적은 사람을 추하고 더럽게 하여 파괴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1차 목적은 죄인들의 구원받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2차 목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 사회를 가능한 한 비참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전쟁, 가난, 억압, 질병, 인종차별, 탐심 및 이와 유사한 수많은 악행들을 볼 때 사탄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악령은 철저히 인간을 파멸 쪽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가 지배하는 영역은 돈, 명예, 향락이고 이것에는 거짓말과 근심이 수반됩니다. 그는 사람을 일단 죄에 빠지게 해서 무질서와 폭력, 반목과 질시, 학대와 살인, 관계성 파괴 등의 결과에 이르게 합니다. 그 결국은 피 흘리고 죽이고 망하게 하는 것이고 영원한 멸망의 자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신에게 몰려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중압감, 병적인 집착, 강박관념, 통제할 수 없는 분노, 원하지 않은 끔찍한 생각들, 이유 없는 불안, 주체하지 못하는 불안, 공격적인 성향, 절제되지 않는 정욕의 노예가 되게 하고 우리를 “광야” 같은 영적인 황무지로 내몰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고 우리 안에 귀신의 영역이 세워지게 됩니다. 세상적이고, 육체적이며 인간적인 더러운 것에 빠져드는 순간 우리의 영은 귀신의 진지가 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더러운 것에 집착하는 한 우리의 속은 귀신이 지배하는 악마의 견고한 도성이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입니다. 가장 큰 영적 싸움은 귀신들과의 세력 싸움이 아니라  진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로 온갖 거짓말로 우리를 자기의 다스림 가운데 두려고 합니다(요 8:44-45). 그는 우리를 속이고 그의 종으로 삼아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이 매일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함으로 교묘하게 우리를 꾀는 마귀의 간계를 대적해야 합니다(골 3:16; 엡 6:11). 우리는 주의 말씀으로 오직 우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엡 4:23-24).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영적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가 명령함으로 그 청년은 즉시 온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세상인 영계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에게 강하신 주님이 없다면 우리는 무력하게 원수에게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신 보호자가 되신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고 그 어떤 자라도 우리를 그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요 10:28-29).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사탄의 세력들을 결박하여 영원히 멸하실 것입니다(계 20:1-3). 

누가복음 8:30

귀신 들린 청년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소리치자 예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그는 “군대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군대는 레기온(Legion)으로 ‘군단’을 의미합니다. 로마의 군단은 6,000명의 보병과 120명의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이름은 천사의 군단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습니다(마 26:53). 로마의 군단인 ‘레기온’은 무적의 군단입니다. 그들은 전쟁할 때 체계화된 신호와 통신체계를 갖추었고 표준화된 무기와 전투 교리가 있어 로마 군단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군단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레기온’은 그만큼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의 강력한 군단인 ‘레기온’과 같은 귀신의 세력들 앞에 홀로 서셨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나게 강한 군단과 같은 귀신의 세력도 창조주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하고 설설 기었습니다. 예수님은 군단과 같은 떼귀신을 홀로 무기도 없이 물리치는 무적의 구원자가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인간이 만든 어떠한 권위나 군대도 마귀의 종들을 통제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구주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목적은 우리를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눅 1:71). 그의 이름은 “구원의 뿔”이라고 불립니다(눅 1:69). 

하나님의 아들, 인류의 구주이신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더러운 영 들린 사람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귀신의 세력을 단한번에 쫓아내실 수 있으셨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권위 앞에 한마디로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과 대화하셨습니다. 특별히 그 귀신 들린 청년의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 사람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과 귀신들의 세력을 분리시키신 것입니다. 이에 그는 “군대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귀신들의 군대 기지였습니다. 더러운 수천 마리의 떼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와 사로잡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불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마귀들은 자신에 대해 어떤 것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고, 숨어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밝히고 싶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심으로 그들은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답해야 합니다. 

천사에게 이름이 있듯 귀신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정체성을 말해줍니다. 그 사람 안에 있던 그 귀신들은 ‘군대(레기온)’이라는 인간의 용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저자 누가는 이 이름을 쓰게 된 이유를 덧붙이고 있다.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그런데 마가는 그 이유를 귀신이 직접 말하는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막 5:9). 귀신은 예수님의 명령에 자기 이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사용한 이유도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귀신들은 예수님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숨은 정체를 드러내었습니다. 

수많은 귀신들은 한 사람에게 거주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이처럼 많은 군단급의 떼귀신이 들어갈 수 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신 들린 청년은 군단급의 떼귀신에 의해 완전히 압도되었고 그의 정신과 의식은 귀신에 의해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그는 귀신에 의해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그 사람을 귀신과 분리시키시고 본래의 정체성과 이름을 되찾아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악령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정체성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사랑받는 자녀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옛 자아는 사라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우리는 악한 세력에 사로잡힌 인생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인생이 되었습니다. 과거 악한 세력이 우리를 다스렸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평안이 우리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자로서 죄의 세력은 더이상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이름, 새로운 신분,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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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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