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강력한 귀신을 제압하신 예수님을 보자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제자들이 또 다시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그가 받으실 두 번째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능적으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듣기 싫어하는 제자들에게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고 하심으로 그들이 반드시 듣고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말씀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43b-44
43b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사람들의 반응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없음과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워했습니다. 그들은 경이로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을 자랑함으로 나의 믿음이 괜찮다는 것을 부각해서는 안됩니다.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분으로 오로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시대 조류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이 믿음이 없는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것을 한탄하심으로 우리가 믿음을 갖기를 간절히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9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안 계시는 잠깐의 몇일 동안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에 있으면서도 광풍이 불자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죽는 소리를 하였습니다(8:24).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무능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그가 놀라운 일을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바라고 매달리는 믿음을 가져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주님을 놓치게 될 때 우리는 실패한 9명의 제자들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참된 견해와 그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이에 예수님 그가 받을 수난에 대해 두 번째로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수난에 대해 예언을 하기 전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 이 구절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없는 구절입니다(마 17:22; 막 9:31). 이를 볼 때 누가는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누가는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두 번째 예언을 언급하면서 오직 그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고 짧게 언급하였을 뿐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에서 “담아 두라”는 말은 sink (down) into your ears(KJV; NASB95; ESV; NRSV)로 ‘너의 귀에 집어 넣어라’, ‘너의 귀에 박히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물질이 귀 안에 들어갈 때 빼내기가 무척 힘들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말씀이 귀 속에 박혀 있어 늘 신경 쓰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강력한 귀신을 내쫓고 아이를 온전하게 한 것에 매우 놀랐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보고 놀라기만 하는 일반 대중과 대조적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당하실 고난을 생각하도록 현실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경이로움과 놀라움의 세계에서 다시금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현실로 이끌고 계십니다. 이는 세 제자가 변화산에서 영광을 보고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하며 눌러 앉아 있고자 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함으로 그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칭송하였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들의 환호가 야유로 바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영광만을 바라고 헛바람이 드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기대하고 바라던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심으로 깨우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으면 메시아적 희망의 나라가 임하기 위해 십자가가 그의 면류관보다 앞서야 한다는 진리를 이해하도록 돕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칭송의 도취감은 곧 예수님의 수난의 현실에 자리를 내줄 것입니다. 주님은 진지한 말씀으로 놀라움에 휩싸인 사람들의 반응에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잠재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정죄를 받고, 형벌을 받거나,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 문제를 담론으로 꺼내지 않기 위해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침묵함으로 애써 외면했습니다.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45절은 For라는 단어로 시작되는데 이는 제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넘겨지다”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배반당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넘겨지리라”는 ‘…하려고 할 것이다’는 의미로 ‘곧 있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임을 말해줍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넘겨주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십니다. 예수님을 넘겨준 이는 그를 배반한 유다입니다(마 26:24). 그는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넘겨 주었고, 그들은 사형 집행 권한이 없으므로 이방인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습니다(마 27:26). 그를 못 박으라고 외쳤던 이들은 “호산나”라고 환영했던 유대인들이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행 3:13).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죽은 데에 넘겨 주었지만 이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정하신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셨지만 그가 죽음으로 그의 계획이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단 교주들이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자기가 메시아로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지만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행 2:23).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는데, 이는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수많은 생명이 살아날 것이고 이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그가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는 것입니다(사 53:10).
예수님은 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45절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것과 같이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숨긴 바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깨닫지 못하게 하고 모호하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9:45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한 이유는 에수님께서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메시아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왕이요 정복자가 될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공통된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게 된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메시아관과 잘못된 믿음 때문에 십자가의 진리가 그들에게 숨겨진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도 이해못했다는 것을 통해 성경의 진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전에 잘못된 믿음이나 관념을 받아들여 그 마음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십자가의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가 공들여 쌓아온 인생의 모든 가치관과 소유와 자기 의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오실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아관을 버려야 이 진리를 깨닫을 수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세 제자들은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제 시작된다는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잘못된 기대와 희망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친히 음성으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심으로 그들이 현실을 자각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을 읽는 올바른 방법은 이전의 모든 견해를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메시아에 대한 이전의 관념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움켜쥔 잘못된 희망은 그들의 눈을 가리웠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하게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자 이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버리고 온전히 성령님께 복종하고 나서야 예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와 일치된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성경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와 일치함을 믿고, 다른 모든 의견을 버려야 합니다.
묻기도 두려워한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의 두 번째 십자가 수난 예고를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 너무나 불쾌한 것이었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며 결코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고통스럽고 슬픈 불길한 예감을 듣거나 느낄 때 그것을 마음에서 지워버리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종교라는 주제를 담론으로 심기를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렵고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주제를 피합니다. 특히 개인의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일수록 이 주제는 피하고자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정을 식게 합니다. 분명 인생의 한계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당장 급한 현실의 유익 때문에 영적인 눈이 가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에 관한 진리를 알고 영생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와 죽음의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쌓아온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 철학과 가치관을 내려 놓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특히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 오랫 동안 풀리지 않았던 인생의 문제가 술술 풀리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제자들은 그가 자기 앞에 놓여 있다고 말한 이 어두운 고통의 미래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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