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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누가복음 10:1-2)

예수님은 칠십 인 제자를 세우셔서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파송하시면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실 것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생명의 복음을 전할 추수할 일꾼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누가복음 10:1

“그 후에”는 갈릴리 지역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끝났음을 알리는 9:1-62 의 사건 이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이에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후 그의 죽음은 구약 성경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임을 알려주시고자 세 제자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영광스러운 용모로 변화되셨습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였습니다(9:31).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자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9:51). 갈릴리 사역은 이제 끝났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의 사역의 첫 단계는 갈릴리 사역이고(4:14-9:50), 두 번째 단계는 예루살렘으로의 여정(9:51-19:27), 세 번째 단계는 예루살렘 입성과 그의 죽으심과 부활(19:28-24:53)로 나눌 수 있습니다. 10장부터는 두 번째 단계의 초기 부분으로 유대와 베레아 사역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둘째 단계 부분은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마지막으로 떠나신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마지막 주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부분은 ‘후기 유대 사역과 베레아 사역’으로 일컬어집니다. 

베레아는 요단 강 동쪽으로 헤롯의 관할권에 있었습니다. 반면 요단 서쪽의 유대는 빌라도의 관할권 아래 있었습니다. 복음서에서 베레아와 후기 유대 사역을 다룬 부분은 마태복음 19:1-20:34과 26:6-13, 마가복음은 10:1-52과 14:3-9, 누가복음은 9:51-19:27, 요한복음은 9:1-12:1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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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openthebible.tistory.com/404

누가는 예수님의 베레아 사역과 후기 유대 사역을 매우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70인 제자 파송(10:1-12),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에 대한 저주(10:13-16), 70인 제자들의 복귀(10:17-20), 예수의 감사기도(10:21-24), 사랑의 계명(10:25-28),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10:25-37),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10:38-42), 기도에 대한 가르침(11:1-13), 바알세불 논쟁(11:14-26), 요나의 표적(11:27-32), 눈은 마음의 등불(11:33-36), 다양한 심판과 경고의 말씀(11:37-54), 제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12:1-12), 재물에 대한 경고(12:13-34), 깨어 준비하라(12:35-48), 시대를 분별하라(12:49-59), 회개하라(13:1-9), 18년 동안 등이 굽은 여자를 치료하심(13:10-17), 누룩과 겨자씨 비유(13:18-21), 좁은 문 비유(13:22-30), 예루살렘 심판(13:31-35), 수종병 든 자를 치유하심(14:1-6), 혼인잔치 비유(14:7-14), 큰잔치 비유(14:15-24), 제자의길(14:25-35), 잃은 양 찾은 목자의 기쁨(15:1-7), 잃은 동전 찾은 여인의 기쁨(15:8-10), 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15:11-32), 불의한 청지기 비유(16:1-13), 하나님나라와율법,선지자(16:14-18), 부자와 나사로(16:19-31), 열 명의 문둥병자(17:11-19), 하나님의 나라(17:20-37), 끈질긴 과부의 기도(18:1-8), 바리새인과 세리기도(18:9-14), 어린 아이들을 영접하심(18:15-17), 부유한 젊은 관원(18:18-30), 수난의 예고(18:31-34)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베레아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혼에 대한 가르침(19:1-12), 어린아이들을 영접하심(19:13-15), 부유하고 젊은 관원(19:16-30), 포도원의 품꾼의 비유(20:1-16), 예수님 수난의 예고(20:17-19),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청탁(20:20-28)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혼에 관한 가르침(10:1-12), 어린 아이들을 영접하심(10:13-16),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10:35-45)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베레아사역과 후기 유대사역의 내용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심(7:1-52), 간음한 여자를 용서하심(8:1-11), 예수님의 설교(8:12-59), 날 때부터 맹인인 자를 고치심(9:1-41), 선한목자 예수님(10:1-21),  예루살렘에서의 수전절(10:22-39), 요단강 동쪽 베레아로 가심(10:41-42), 나사로를 살리심(11:1-53), 향유를 부은 마리아(12:1-11)입니다. 

예수님은 9:57-62에서 세 명의 제자 후보생들에게 제자도를 말씀하신 후 70인 제자들을 세우셔서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누가는 9:1-9에서 열두 제자를 전도 여행 보내신 것을 기록했는데, 여기서는 70인 제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파송한 것을 기록했습니다(9:1-6). 70인 제자들이 받은 사명은 열두 제자의 사명과 유사합니다. 누가는 앞의 기록에서와 마찬가지로 선교의 장소나 기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제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언제 돌아왔는지에 관한 것보다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반면 마태는 70인 제자의 전도 여행을 언급하지 않았고 열두 제자의 전도 여행의 기록에는 그들이 가야할 장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마 10:5-6). 

예수님은 그후 그가 전하는 말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화”를 선포하신 후(13-15), 그가 파송한 제자의 복음을 듣지 않고 저버리는 것은 곧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이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임이라고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16).

예수님은 12제자를 전도 여행 보내신 것처럼(9:1-6), 70인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각 도시와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셨습니다. 누가만이 70명을 파송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70명은 분명히 9:23-26과 9:57-62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데 치러야 할 대가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후 예수님은 제자도에 관한 그의 말씀에 기초해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도록 그들을 세상으로 가라고 진군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또한 오직 누가만이 70인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다녀온 후 선교 보고회를 갖도록 하셨습니다(10:17-20). 

예수님은 선교 여행을 위해 따로 칠십 인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원자를 모집한 것이 아니라 그의 뜻과 계획 가운데 70명을 임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선교 여행을 위해 택한 70인 제자는 자원자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이 땅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보석으로 장식되어 보존되어 있을 것입니다(10:20).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주님께서 선택하시고 임명하시고 주권적으로 이루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이 공급되고 성령께서 일하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고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므로 교회의 일에 적극 부응해야 하고 이것이 생명 구원 역사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 선한 일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로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십니다(엡 2:10). 하나님은 그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실현될 수 있도록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 안에서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70인 제자를 세상에 보내실 때 둘씩 보내셨습니다. 이는 상호 격려와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전도서 4:9-10은 그 이유를 제시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잠언 27:17도 비슷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이 말씀은 인간 간의 교감과 친분, 특히 친구 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말씀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은 서로의 관계에서 상호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서로를 성장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두 사람씩 보내시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확실성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는 신명기 19:15,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는 구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께서는 둘씩 짝지어 일하게 하시는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선교 여행을 보내셨습니다(행 13:2). 예루살렘 교회에서 열렸던 교회 지도자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항을 유다와 실라를 보내어 그 일을 전하도록 했습니다(행 15:27). 2차 선교 여행을 할 때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갔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갔습니다(행 15:39-40). 바울이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의 사역으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은 후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냈습니다(행 19:22).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 할 때 외로움을 느끼고 동력이 사라집니다. 신선한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고 자기가 해온 습관에 젖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옆에 같이 일하는 동역자가 있을 때 든든하고 때로는 격려를 받기도 하고 같이 일을 한다는 자체로 힘을 얻습니다. 

마귀는 혼자 있는 사람을 유혹하여 그릇된 방향으로 안내합니다. 그러나 동역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그들 중에 항상 계십니다(마 18:20). 

“칠십 인”과 관련하여 ESV, NIV, NLT, NASB2020 등은 72인으로 번역되어 있고, KJV, NASB95, NRSV, RSV에서는 70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차이는 사본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70이라는 숫자는 완전수 7에 10을 곱한 것으로 성경의 저자들은 완전수를 의도하여 틀에 짜맞추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노아 자손들의 이름을 세어 보면 셈과 함과 야벳을 제외하면 70명이 됩니다(창10:32). 또한 기드온의 70명의 아들(삿8:30), 아합의 70명의 아들(왕하10:1), 이스라엘 장로 70인(민11:16-25)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환상 가운데 언급된 일흔 이레의 기간(단 9:24),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렘 29:10), 엘림의 종려나무 70주(출 15:27) 등 70이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저자는 70명을 의도적으로 짜맞춤으로 완전성과 충만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 70명이 큰 민족이 되었듯이 예수님의 제자 70명이 세계 각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70인의 전도를 통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함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을 갈망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것이 정확한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파송한 제자가 70명이었는지, 72명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시와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10:17). 또한 70명(혹은 72명)의 제자를 통해 전도의 필요성을 강조하시고 장차 복음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질 비전을 갖고 계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전도 여행 보내실 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심으로 그들의 전도를 갈릴리 지역에 국한시키셨습니다(마 10:5-6). 그러나 70명(또는 72명)에게는 그러한 제한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70명의 제자들의 정체는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으며, 심지어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시대에도 그 그룹은 다시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일에만 국한된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는 70인 제자들의 존재를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9:49 에 나오는 이름 없는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가 70인 제자 중 하나가 아닌가 여겨지고 있습니다. 열두 사도 중 유다가 배반하여 열한 제자가 되자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과 맛디아 중에서 사도 하나를 뽑았는데 맛디아가 최종적으로 열두 사도 그룹에 속하게 되었습니다(행 1:23). 그래서 그 두 후보도 70인 제자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의 자격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이어야 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자격을 충족시킬 만한 사람은 70인 제자 그룹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1:22). 우리는 또한 이 70인 제자가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였을 때 성령이 처음 부어졌는데 그때에 모인 수가 약 120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인 무리 중에 여자를 포함시키면 70인 제자들이 같이 모여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행 1:15).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70명(또는 72명)의 제자들의 이름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목하신 것은 그들에게 주신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10:20).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섬길 때 많은 일을 하고 능력을 행하며 믿음의 좋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큰 기적은 자격 없는 죄인이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요 그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롬 5:8 ;  고후 5:21;  요 1:12 ). 

우리의 초점이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로 옮겨갈 때,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중요시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관심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전 1:28-29;  빌 2:9-11). 우리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빌 4:3; 계시록 3:5 13:8 17:8 20:12,15; 21:27). 

누가복음 10:2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라는 구절은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라는 구절과 연결됩니다(막 6:34). 예수님은 그를 대신해 그의 양들을 먹일 목자를 찾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무리가 부담스러웠고 그들이 있는 곳은 빈 들이라 무리를 먹일 수 없으니 그들을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도록 재촉했습니다(9:12; 막 6:36). 

예수님의 양들은 목자가 없어 방황하는데 그들을 책임질 제자들은 영적으로 아직 어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은 안타까웠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도 추수할 일꾼이 부족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농부가 수확으로 황금빛 밭을 보고 그 수확물을 거두어 들일 일꾼이 없는 농부는 심각하게 고민할 것입니다. 추수할 밭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러한 고뇌가 가득했습니다. 필요한 숫자에 비해 70인은 매우 적은 숫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실 때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막 6:34). 그런데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나눠줄 목자가 없어 문제였습니다. 거기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설교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굶기고 탈진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영혼들을 돌보고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참된 일꾼들은 극소수였습니다. 단지 70명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일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양들을 먹일 좋은 사역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눠줄 훌륭한 사역자를 위해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점점 신학생 지원자가 줄고 있습니다. 풍족하게 사는 목회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목회자들이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생계를 위해 헌금할 신자들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구약 시대의 레위인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성전과 제사를 섬겼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다른 지파가 드리는 헌물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신 18:1-2). 사사 시대에 접어 들면서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삿 21:25).그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섬겼던 레위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였습니다(삿 17:7-10).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레위인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줄고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목회자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되는 현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을 때를 따라 나눠줄 말씀의 종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라는 기도 제목을 주셨습니다. 

곡식이 익으면 거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한때 자라던 밭에서 썩어 죽기 전에 수확할 수 있는 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이것을 인간 영혼에 적용해 보면 추수할 일꾼의 부족으로 그들이 구원받을 시기를 놓치고 영혼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 중 어느 누구도 결코 잃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추수할 일꾼의 부족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주인은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여 곡식 베기를 끝낼 수 없음을 알고 서둘러 사람들을 고용하고 다른 마을과 시장으로 가서 게으른 일꾼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예수님에게는 열두 제자인 12명의 일꾼이 있었지만 인간 영혼의 밭에 있는 열매는 그들이 수확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70인 제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추수할 밭으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꾼이 부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기도하신 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 성령의 능력에 따라 방언, 즉 각 나라 말로 설교를 하자, 삼천 명이 한꺼번에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아 그들이 추수할 일꾼이 되었습니다(행 2:41). 그 수는 점점 불어나 믿는 자의 수가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행 4:4). 

그러나 추수할 일꾼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게 되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행 8:1). 이로 인해 초대 교회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박해를 통해 추수할 일꾼을 더 넓은 추수밭으로 내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과 뜻 가운데 박해자 사울을 변화시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행 9:15). 하나님은 사울을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3차에 걸친 선교 여행을 통해 소아시아와 헬라 지역에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세웠습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당시 세계의 중심지 로마를 보았습니다. 바울은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 

그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서 감옥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그를 찾아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행 28:30-31).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들은 간수들과 그를 면회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은 온 로마에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매임을 통해 왕궁 근위대 안과 그들과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나타났습니다(빌1:13). 바울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고 온 로마로 퍼져갔습니다(딤후 2:9). 

예수님께서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도록 명령하신지 2천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추수할 것은 아직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9:57-62에서 아버지의 밭에 일꾼이 그토록 적은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하시자 그는 따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는 핑계를 댔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라고 말함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머뭇거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시면서 그가 제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시는 것을 주지 않자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요 6:66).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으로서 수준 높은 제자도를 요구하셨습니다. 추수할 일꾼은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청하다”는 말은 pray로 ‘기도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부정과거 명령형입니다. 헬라어에서 부정과거는 단회적인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라는 것은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명령형은 지체하지 말라는 것으로 긴박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혼이 영원히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수확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추수는 두 가지 의미로 비유적으로 사용됩니다. 하나는 이 구절에서처럼 구원받은 영혼의 추수를 말하고 있지만 또한 미래의 심판을 말합니다(마 13:30; 계 14:15).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서 그 영혼이 추수되지 않으면 어느 날 불신자로서 영혼이 추수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받게 됩니다. 

추수된 알곡은 주님의 주권과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추수에 그와 함께일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우리가 추수할 일꾼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추수할 일꾼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추수할 일꾼을 위한 기도의 명령은 우리에게 긴박감과 압박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만큼 생명 구원이 긴박하고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수하는 일꾼으로 생명을 추수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능력을 입을 때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추수의 결과는 우리의 웅변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부담을 덜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복음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보내어 주소서”라는 단어는 ‘파견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내쫓다’, ‘모욕하다’, ‘몰아내다’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뜻도 있습니다. 사람은 귀찮아 하고 게으른 본성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압력을 가하는 힘이 항상 필요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강한 명령에 의해 원하지 않았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안일에 거하며 적당히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늘 긴박한 명령과 부담스러운 말씀으로 우리가 영적으로 긴장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긴박하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부담을 주시는 것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그가 더 긴박함을 느끼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마음의 작은 부분이라도 공유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수많은 영혼을 수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추수할 밭과 같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섯 남편을 갈아 치웠던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시고 영생수를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그녀가 사는 동네에 들어가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이틀을 더 유하시면서 그들과 말씀 집회를 가지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고 그들은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요 4:40-42). 예수님은 이 현상을 가리켜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4:35).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역을 ‘영혼의 불모지’라고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곳을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추수할 때가 되려면 “넉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시면서 긴박한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고 예배하는 우리가 우리 모두가 “추수할 일꾼”이 되도록 주기도문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이 기도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올바른 기도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마 6:33). 우리 주님은 우리가 추수할 일꾼을 구하는 기도를 한 후 추수할 일꾼이 되어 추수할 밭에 가서 추수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선교 활동은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결국 추수할 일꾼으로 추수할 밭으로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의 선교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하나님은 구원의 일을 주관하시는 주님이시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분이 그분의 장대한 계획에 따라 사람들에게 책임을 주시는 것을 보게 보게 됩니다. 이것은 일정한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이 부담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마음과 정신이 망가지고 부패하게 됩니다. 존재 가치를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은퇴한 노인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젊은 날 열심히 회사나 자기 사업장에서 일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힘들고 부담스러워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잘 안되어 절망도 하기도 했지만 그 일을 함으로 자기 존재 가치를 느끼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은퇴하면서 그가 가졌던 직책도 사라지고 그가 이룬 업적도 과거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일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살아 있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존재 의미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 주님은 추수할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생명을 구원하는 엄청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일을 할 수 없지만 우리 주님은 성령을 주셔서 이 일을 능히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죽어가는 생명이 살아나고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자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감사가 흘러 넘치게 됩니다. 

추수할 일꾼은 은퇴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추수할 일꾼을 세워 주시도록 기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년 퇴직이 없는 추수할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추수하는 일꾼을 위해 기도하고 추수할 일꾼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자로 그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관중이 아니라 일꾼입니다. 우리는 목회자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구경만 하는 자가 아니라 목회자를 중심으로 같이 동역하는 추수할 일꾼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을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초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그들이 복음을 듣도록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들은 ‘적대적인’ 세력이 아니라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가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고 혼합 종교를 믿는 자들이라고 무시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사마리아가 ‘영적인 불모지’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 사마리아는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이었습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영적인 눈, 즉 선교의 눈을 떠서 예수님의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추수할 일꾼을 간절히 원하시는 우리 주님의 간절한 뜻과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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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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