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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표적 “요나의 표적”(누가복음 11:29-32)

예수님은 무리가 많이 모이자 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가장 큰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요나의 표적”이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간 있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부수실 것입니다. 요나 시대 니느웨 사람과 솔로몬 시대의 남방 여왕은 이방인이었지만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이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축복을 많이 받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그들이 당할 심판은 처절하고 끔찍스러울 것입니다.

누가복음 11:29

무리가 많이 모이자 예수님께서 그가 앞으로 보이실 표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몰려왔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나아온 것은 믿음이 아니라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온 무리를 향해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라고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악하다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믿음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는 “너희가 평안하리라…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하였습니다(렘 23:17). 예수님은 그에게 나아오는 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죄와 맞서지 않는 설교는 모두 거짓 설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덮어 포용하심으로 치유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다루지 않는 메시지는 죄를 흰 눈과 같이 덮어서 안보이게 할 뿐입니다. 눈이 쌓이면 세상은 온통 아름답게 변합니다. 그러나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그 밑에 가려진 죄들이 눈과 섞여 진창이 됩니다. 이처럼 거짓 평안은 죄와 함께 섞여 사람을 더 더럽게 합니다. 

죄는 암과 같이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죄의 암을 도려내어야 치유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섬기다 보면 숫자를 성공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수천 명이 교회로 모여든다면 그 교회는 교회 성장의 모델이 됩니다. 그러나 죄를 지적하지 않고 심판의 끔찍함을 전하지 않으며 제자도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 성공은 거품과 같이 꺼지고 말 것입니다. 

성경적 설교는 항상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전하는 자는 사람들의 귀를 간지럽히지 않고 듣는 사람의 욕망에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치유하실 때 수술의 메스와 치료의 붕대를 사용하십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수술하는 것과 같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수술 후 회복 과정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인정하고 죄에서 돌이킴으로써 죄 사함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9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9:41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말씀은 소수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세대의 대다수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율법을 잘 지키는 선민으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에 대해 율법이 없이 아무렇게나 사는 부도덕한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고, “악한 세대”라고 하심으로 그들의 내면은 영적으로 뿌리까지 악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의롭다 생각함으로 도덕적인 속임수에 무감각해진 치명적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의 복음이 필요 없고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했고 이 생각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에 관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의 ‘종교성’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복음을 단순히 종교와 도덕적 차원에만 가두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차단하게 합니다. 죄책감을 완화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오히려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시대를 가리켜 “악한 세대”라고 정의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자기 삶을 깨끗하게 하려는 시도는 악한 것입니다. 이들의 결과는 비참하고 끔찍스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26)라는 무섭고도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도덕적인 것이 부도덕한 것보다 더 위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사람이 오히려 자기 죄를 인정하고 죄에서 벗어나기를 더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이 없으면 삶의 개혁은 유익이 없습니다. 

그 세대는 자신들이 “악한 세대”가 아니라 의로운 세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도덕의 저주를 받고, 종교의 저주를 받고, 개혁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악한 이유를 표적을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에게 백 가지 표적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방금 예수님께서 말 못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말하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14). 그들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일으키시는 것(5:17-26),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 것(6:6-11), 그리고 다른 많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구한 그들의 죄는 표적에만 관심이 있고 예수님께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죄는 반역하고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좋은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표적은 아무 의미가가 없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증거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회개의 부족이었습니다. 

무리가 표적을 열망하는 이유는 16절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께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권세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을 보았는데도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종이 아니라면 그것을 증명할 다른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았지만 아직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우리를 믿게 만드는 일을 해보세요!”와 같은 말로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맥락에서 무리를 “악한 세대”라고 부른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신앙은 불신앙입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은 반드시 믿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회의론자들은 증거가 부족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의심을 표현합니다. 그들이 정말 지적이라면 베뢰아 사람처럼 말씀을 듣고 “이것이 그러한가?”라고 상고할 것입니다(행 17:11). 표적에 대한 지나친 요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지 않고자 하는 고의성을 드러냅니다. 

누가복음 16:19-31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죽어 불이 타는 지옥에 가게 됩니다. 부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기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의 제안이 거절되자 부자는 그에게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죽은 자가 살아나서 그들에게 알리면 그들이 회개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표적 중에 가장 큰 표적입니다. 그러나 그 비유에서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나타나더라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고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활의 확실한 증인을 보고 증거를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해 변화된 수많은 복음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얼마든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표적은 증인이 전한 메시지가 진실하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에 큰 기적이 나타난 시기는 모세 시대와 구약의 선지자 시대,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계실 때와 사도 시대 뿐이었습니다. 또한 그 표적도 중요한 인물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 표적은 모두 장차 오실 메시아와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시대에는 표적을 통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시기 위해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가 행한 표적의 소문은 사방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표적 중의 표적인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그들에게 심판이 임박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렸습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그가 회개하자 큰 물고기가 그를 토해내었습니다. 요나는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간 무덤에 묻히셨습니다.요나가 사흘만에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것과 같이 예수님도 사흘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보이실 십자가와 부활은 가장 큰 표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신 것이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쳐부순 역사적이고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온 인류의 숙원이었던 죄와 사망의 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표적입니다. 

그러나 이 가장 큰 표적도 마음이 완고한 자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이 표적을 보고 영접한 자들은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할 것입니다. 이 표적은 그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1:30

요나는 큰 물고기가 그가 삼켰던 요나를 육지에 토하기까지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습니다(욘 2:10).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심판을 전하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자로부터 낮은 자까지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이교신들을 섬기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율법책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선지자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요나가 억지로 전한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요나가 전하는 심판의 메시지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는 노아의 경건한 삶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11:7은 그의 경건한 삶의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적이 되었는지를 묘사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11:7). 

마태복음의 기록에서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물고기 속에 머물렀다가 풀려난 것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의 유사점을 강조합니다(마 12:39-40). 반면 누가에게 있어 중요한 측면은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전파되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이방인들이 회개와 예배로 응답했다는 점입니다. 이 일은 바울의 사역을 통해 복음 메시지가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민족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나가 마지못해 심판의 메시지를 듣자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유대인들은 요나의 표적에 대해 들었을 때 이교도인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이 했던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방인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헛된 자부심과 완고한 불신을 고집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1:31

예수님은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그 세대 사람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방 여왕은 오늘날의 예멘인 시바의 여왕입니다(왕상 10:1-13). 그녀는 이교도였지만 그 마음은 참 하나님께 열려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달리 그녀는 “나에게 다른 표징을 보여 주시면 믿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솔로몬은 요나처럼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았지만 시바 여왕은 솔로몬을 축복하신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녀는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유대인의 하나님을 찾으라는 권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솔로몬에게서 그분에 관한 진리를 구했고 듣고 나서 믿었습니다. 그녀는 이 사악한 세대의 유대인들이 가졌던 특권도 없고 예수님의 가르침도 전혀 듣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종했습니다. 남방 여왕은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끈질기게 하나님의 말씀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께 표적을 구한 사람들은 바로 자기 동네에서 그분이 행하신 일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31절에서 세 가지 대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방 여왕”과 “그 세대 사람” 사이이고, 둘째는 “땅 끝”과 “여기” 사이며, 셋째는 “솔로몬”과 “솔로몬보다 더 큰 이”입니다. 

남방 여왕은 심판 때에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이며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였지만, 이 이교도 이방인 여왕은 진리를 구했고 진리를 들었을 때 믿었습니다. 이방인 신자가 유대인들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거절한 죄의 결과는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하는 것입니다. 듣고도 믿지 않을 때 가장 엄중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졌던 어떤 것보다 훨씬 더 큰 기회와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이 받은 특권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들에게 임할 심판은 더욱 클 것입니다.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왕이셨고, 그의 왕국은 솔로몬보다 위대했으며, 솔로몬보다 지혜로우셨고, 그의 복음은 솔로몬의 지혜보다 우월합니다. 남방 여왕은 인간적으로 흠이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할 정도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억지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요나가 전한 말씀을 믿고 회개할 만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솔로몬이나 요나보다 “더 큰 이”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요 8:28).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진리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완성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전 세계에는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이 한 권도 없는 종족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깨닫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제지와 박해가 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마음껏 찬송할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32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진리에 대한 수용성이 이방인이 이스라엘보다 훨씬 더 크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영적인 축복 면에서 유대인에 비해 가진 것이 너무 적었습니다. 그들은 율법도 없었고 약속도 없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제사 제도도 없었고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적 무지와 어둠 속에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거부한 채 도망간 철부지 선지자 요나의 마지못해 전한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온 도시가 금식하며 재에 앉아 회개하였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그들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출 34:6).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그의 아들을 유대인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친히 말씀하시고 질병을 치유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 미워하고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완악함을 니느웨 사람과 비교하셨고 심판의 때에 그들을 증인들로 세우시고 그들을 정죄하실 것입니다. 심판 때에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에 더 큰 특권을 받은 이스라엘에 대한 정죄의 상징으로 서 있을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정하신 심판을 보류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죄인이 아무리 사악하고 세속적이라 할지라도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크신 자비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진정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면 구원을 받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십자가의 강도입니다. 그는 죽은 순간 그의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심으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눅 23:42-43). 

복음은 원시 이교도이든 종교적인 선을 행하는 사람이든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이는 아무리 나쁜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과거가 아무리 끔찍했더라도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신 분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고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될 모든 죄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간증입니다.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되십니다.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신 그리스도는 그의 본성과 인격과 사명에 있어서 요나보다 무한히 크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서 불과 40일 동안 회개를 전파했고,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해 동안 유대인들 가운데서 회개를 전파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매일, 어디로 가든지, 온갖 종류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에도 유대 백성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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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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