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랴의 친족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엘리사벳은 천사가 지어준 이름을 따라 ‘요한’이라고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종 결정권은 아이의 아버지인 사가랴에게 넘겨졌습니다. 사가랴는 서판에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쓰라고 결정했습니다. 사가랴는 이 아이가 자기 가문을 잇는 것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누가복음 1:59-61
59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가문을 중요시한 친척들
이웃과 친족은 요한이 탄생한 지 팔 일이 되자 할례를 행하러 왔습니다. 할례의 날은 하나님의 백성과의 언약에 아이를 받아들이는 날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유아 세례와 같습니다.
이 날 이웃과 친족은 요한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왔을 것입니다. 할례는 언약 백성으로의 입회식을 의미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믿음 관계의 표시였습니다(창 17:12-14; 21:4; 레 12:3). 할례를 행하는 것은 주님께 순종한다는 결단의 표시였습니다.
성경에는 할례를 행하는 날을 “여덟째 날”로 규정해 놓았고 유대인들은 이를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누가 할례를 행하는지 어디에서 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규정은 없습니다. 모세의 아들은 여인숙에서 할례를 행했습니다(출 4:24-25). 후에는 주로 회당에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아마 사가랴의 아들은 집에서 할례를 행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할 때 아버지가 축복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친척이 그 일을 대행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할례가 이루어지고 나서 아이가 이름을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하고자 하였습니다. 구약을 보면 아이의 이름은 출생 시에 짓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습니다(참조, 창 4:1; 21:3; 25:25~26). 사가랴와 친족들은 할례 의식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할례를 행한 후 이름을 짓기도 했습니다.
친척들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 적극 자기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 사회에서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권한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척들이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에 나선 이유는 아마 사가랴는 귀가 먹고 말을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관습을 좇아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 2세라고 하고자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 이후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는 관습이 생겨났습니다. 이은 대가 끊기지 않고 집안의 이름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엘리사벳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아니라”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강한 어조의 부정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벳은 천사가 지어준 이름 그대로 “요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친족들은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라고 말하며 난색을 표시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엘리사벳이 여성이라서 그녀가 결정권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자 최종 결정권에 아버지 사가랴에게 주어졌습니다.
누가복음 1:62-63
62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사가랴
친척들은 사가랴에게 몸짓으로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는지 물었습니다. 여기서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을 볼 때 사가랴는 벙어리일 뿐만 아니라 들을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들을 수 있다면 몸짓이 아닌 목소리로 물었을 것입니다.
사가랴는 서판을 달라고 하여 그 서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라고 간결하고 단호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놀랐다는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결정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전통은 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전통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부모나 그 조상들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 가문의 영광을 계승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가랴 2세라고 할 것인가 요한이라고 할 것인가의 논쟁에서 무엇을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친척들은 가문을 중요시 여겼고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뜻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대를 잇는 것에 집착합니다. 특히 고대 사회에서는 대를 잇는 것을 목숨과 같이 여겼습니다. 이는 자기의 이름이 자손을 통해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입니다. 자기 가문은 곧 자기의 명예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자기 가문과 자기의 이름보다 하나님의 뜻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요한”은 구약에서 “요하난”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대상 3:15 , 에스라 8:12 , 예레미야 41:11 ). 이 이름의 히브리어 의미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은혜가 사가랴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바라보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요한의 이름의 뜻
그 부모의 이름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암시합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그의 약속에 충실하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엘리자벳”은 “나의 하나님이 맹세하셨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은 그가 맹세하신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사가랴 부부의 이름과 그의 아들의 이름이 갖는 의미는 세상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자식의 이름을 짓는 권한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이 주신 이름을 선택함으로 그가 그의 아들이기보다 하나님께 속한 자녀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 소망을 자녀에게 투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못 다 이룬 소망을 자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드려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 그 자녀를 책임지시고 인도하시고 키우실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 부모가 아들을 나실인으로 드린 것 같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메시아의 선구자로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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