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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비유(누가복음 7:31-34)

예수님은 그 세대를 장터에서 놀이하는 어린 아이들에 비유하셨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놀이를 하였습니다. 결혼식 놀이에서는 피를 불면 상대방은 춤을 추고 곡을 하면 상대방은 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세대 사람들은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요한도 예수님도 마땅하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7:31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거절한 자들을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랍비들은 비유를 통해 영적 실재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랍비적인 방식을 사용하여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지적하고자 하셨습니다. 

“세대”는 누가복음에서 정죄의 용어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셨고(9:41),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악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11:29). “세대”라는 말은 그 시대의 부정적인 경향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신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했습니다(롬 12:2). 

우리는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세상 지도자들은 ‘더 나은 사회’와 ‘더 낳은 삶’을 약속합니다. 그들이 약속하는 세상은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다릅니다. 세상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와 대척점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이 좋다고 여긴다면 세상의 화려함에 속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대”를 말씀하실 때 부정적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함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버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7:32

요한의 세례를 거절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유치한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어린 아이를 긍정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키셨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어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고자 하던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16-17). 또한 제자들이 ‘누가 크냐’하면서 다툴 때에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37). 

그러나 여기서 언급한 어린 아이는 떼를 쓰고 자기 멋대로 하는 유치한 어린 아이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겉으로 고상한 옷을 입고 거룩한 모습으로 자기를 꾸민 종교 지도자들이 장터에서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노는 어린 아이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첫 번째 놀이는 결혼식 놀이이고 두 번째 놀이는 장례식 놀이입니다. 장터에서 결혼식 놀이를 할 때 한 그룹의 아이들이 피리를 불면 다른 그룹의 아이들은 이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장례식 놀이를 할 때 한쪽에서 애가를 부르면 다른 쪽 아이들은 울어야 하는데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놀이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세대를 전혀 반응하지 않거나 엉뚱한 반응을 하는 아이들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회개를 촉구했음에도 삐딱하고 완고하고 제멋대로 행하는 아이들처럼 행동했습니다. 

누가복음 7:33-34

아이들의 놀이는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에 적용됩니다. 아이들이 결혼식 놀이를 할 때 한쪽에서는 피리 부는 사람을 모방합니다. 그러면 다른 쪽의 아이들이 보통 춤을 추면서 반응을 해야 놀이가 됩니다. 또한 장례식 놀이에서는 애도하는 여자들을 흉내내어 애곡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슬피 우는 흉내를 내면서 반응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어느 쪽도 하지 않고 둘 다 싫어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놀이가 되지 않습니다. 피리 부는 아이들을 흉내 낸 아이들은 즐거운 복음의 소리를 전한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상징합니다. 애통하는 자의 역할을 한 어린이들은 회개의 교리를 전파한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 요한의 제자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 그 어느 쪽도 참여하지 않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심통 부리는 아이들과 같이 제멋대로이고 비뚤어지고 기쁘게 하기 어려운 자들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어떤 사자를 보내시든지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광야에서 은둔하면서 금욕적이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았던 세례 요한이 왔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를 귀신이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에 인자가 와서 구원과 자비를 베풀었고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기쁨을 나누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분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지 않겠다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비난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가리기 위한 외투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싫어한 것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자기 죄를 자복하고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낙타 털옷을 입고 광야에 거주하면서 금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요한을 귀신 들려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다른 사람과 조화하며 어울리지 않는 ‘급진적인 은둔주의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과 대조적인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 대해서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비난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볼 때 예수님은 금식도 제대로 하지 않고 늘 먹고 마시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남의 밭에서 밀을 따서 먹어도 책망하지 않고 제자들을 옹호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정하다고 여기는 나병 환자에게 손을 얹어 고치시고 죽은 청년의 관에 손을 얹고 청년을 일으켜 살리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고 먹고 마시며 너무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급진주의적인 자유주의자’로 보였습니다. 

바리새인의 눈에는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같이 하지 않는 자는 ‘이단자’였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반사회적이라고 비난하였고 예수님은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사교적인 집단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들에게 식탐과 주정뱅이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로 비춰졌습니다. 

사람이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지 않았고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에서는 함께 먹고 마시면서 기뻐해야 마땅합니다. 장례식에서는 같이 슬퍼해주면서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한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할 때 자기 죄를 슬퍼하며 회개해야 하고 성육하신 예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다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옳다고 생각한 고집스럽고 완고한 자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7:35

여기서 지혜는 자녀를 둔 어머니로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그 결과, 즉 “열매” 또는 그것이 산출하는 것에 의해 올바른 것으로 나타나거나 참된 것으로 입증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자손’, 즉 따르는 사람의 의로운 열매에 의해 지혜가 입증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9에서는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29절을 보면 백성과 세리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고 그의 말씀을 듣고 난 후 하나님을 의롭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사람들이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는 것을 인정하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기서 지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자녀”는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지혜를 말씀하셨는데 그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그를 따르는 자들과 그들의 삶의 열매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약속된 메시아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세상은 “전문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지혜롭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키려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관점을 가장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입증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는 논쟁이나 논쟁으로 입증되지 않습니다. 지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증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최선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합니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을 아무리 설득력 있게 변호하더라도 그들의 지혜를 가장 잘 판단하는 것은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논증으로 자신을 입증하지 않으시고 그가 행한 일로 입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며 못 걷는 사람을 걷게 하며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하시고 귀먹은 사람을 듣게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7:22). 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는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셨고 십자가의 대속의 유효함을 입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하신 사건 이후 그를 영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고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겨자씨처럼 땅에 떨어져 싹을 트고 자라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의 나라인 교회는 결코 멸망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성장해왔습니다. 

이처럼 여러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지혜는 시험을 받아 참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심리학과 철학과 같이 세상의 지혜의 경향은 오락가락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고 영원불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며 순종하고 따르는 삶을 살 때 시간이 지나면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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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신학자와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석서를 참고하지만 그 내용이 어려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종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주석을 참고로 하여 내용을 알기 쉽게 편집했습니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종합한 내용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고 신학적 측면에서 여러 견해가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로써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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