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아홉 차례에 걸쳐 애굽을 재앙으로 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으로 애굽의 처음 난 것을 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 재앙을 피할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재앙이 그 피를 보고 넘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세상 죄를 지시고 그 고귀한 피를 흘리심으로 십자가에게 죽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피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날도 유월절과 일치합니다. 출애굽의 모든 사건은 장차 이루어질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이 있는 달을 새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새해 첫달 14일에 유월절 예식을 행하고 그 다음날부터 7일간 무교병을 먹으며 애굽의 고난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인 무교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유월절 예식을 명령하심(12:1-14)
출애굽기 12:1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유월절 예식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레위 지파 사람이었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를 위해 제사장의 역할을 할 아주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심으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삼으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를 만드시고 시행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신 때는 적어도 유월절 나흘 전이거나 훨씬 그 이전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인 1월 14일 나흘 전에 양을 잡고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유월절 예식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자 재앙으로 애굽을 치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예식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유월절 예식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12장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달을 이스라엘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들이 출애굽하는 그 달이 1월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농사를 지을 때에는 민간력을 사용하였는데 출애굽 때부터 그들을 절기를 지키기 위해 유대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력은 음력을 사용하며, 1년은 354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만들어 태양력과의 차이를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한 달을 ‘아빕월’이라고 불렀고(출 13:4; 23:15; 34:18; 신 16:1), 후에 바벨론 포로 이후 ‘니산월’로 바꾸어 불렀습니다(느 2:1; 에 3:7). 이 날은 대략 3월과 4월에 해당합니다. ‘아빕’은 문자적으로 보리나 다른 곡물의 “어린 이삭”을 의미합니다(출 9:31; 레 2:14). 이 달력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새 해 첫날은 봄에 보리 새 싹이 나오는 시기와 가장 가깝습니다. 히브리 민간력으로 하면 7월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동안 애굽의 달력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새해는 9월에 시작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9월이 세상이 창조된 때라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력을 그들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였고, 그들이 물건을 사고 팔고 계약을 맺고 농사를 짓는 것은 민간력을 의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이스라엘만의 달력을 정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달력을 통해 유월절 절기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마음에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두고두고 미워하고 원망하지만 받은 은혜는 쉽게 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성을 잘 아셨기 때문에 그들이 그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달력까지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구원을 받은 유월절이 있는 달을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로 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새해를 시작하면서 애굽의 고난을 생각하고 그 가운데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은혜를 기념하도록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우리 믿는 자들은 무엇을 기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세례와 성찬은 우리 주님이 명하신 것이고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성례입니다(눅 22:19; 고전 11:23-26). 세례와 성찬은 영적인 유익을 줄 뿐 아니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는 예식으로 개혁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유일한 예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에 관한 말씀에 관하여 그가 주께 직접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하셨음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찬에서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고전 11:23-26).
또한 교회는 성탄절과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 여러 절기를 지킴으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이런 것들은 구원을 위해 꼭 실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감사하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또한 주일 날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께 몸을 보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또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 예배로 그치면 안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롬 12:1).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이신칭의의 원리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주님의 은혜를 쉽게 잊고 자행자지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당하고자 할 때 그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새 삶을 살도록 하게 하신 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영적 생일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언제 구원받았는지,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희미하다면 그 사람의 신앙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영적인 출생일을 기억하면서 구원의 은혜를 돌이키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출애굽기 12:3-4
3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도록 하십니다. 새로 정한 새 해 첫 달 열흘(1월 10일)에 각 가족들은 어린 양을 잡아야 합니다. 이 날은 유월절 4일 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유를 두신 것은 매우 큰 혼란의 상태에서 유월절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급하게 유월절을 시행했다면 유월절 예식을 행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충분한 시간을 주심으로 그 동안 유월절을 준비하면서 그들의 구원에 대해 묵상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충분히 대화하고 구원의 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위해 통일된 마음을 갖추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족 단위로 어린 양을 잡아 가족이 함께 모여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해야 하고 한 양의 같은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한 가족이 어린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양 한 마리를 잡도록 하셨습니다. 즉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사람의 수를 계산하도록 하셨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어린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10~20명 정도되었다고 합니다. 혼자서 유월절 예식을 할 수 없고 한 가족이나 이웃 가족을 합쳐서 모든 사람이 자기 분량의 고기를 먹어야 하고, 그 사람들은 양 한 마리의 고기를 남김 없이 다 먹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폭식을 허용하지 않으셨고, 그렇다고 남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유의 개념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교회에 적용할 때 가족 단위는 먹는 것은 교회의 성도들을 일정 수로 나누어 교제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격적인 교제가 될 수 있도록 소그룹 단위로 나누어 교제할 때 교회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이로 인해 한 마음이 되어 지체 의식을 갖게 됩니다.
출애굽기 12:5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하나님은 유월절 예식을 위한 희생 동물을 양이나 염소 중에서 골라야 하고 흠 없고 일년된 수컷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은 히브리 원어로 ‘어린 작은 가축’을 말합니다. 그래서 5절에서 “너희 어린 양은”이라는 말은 ‘너희가 드릴 희생 제물은 …”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은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도록 하셨습니다. 염소도 그들이 희생시킬 “어린 양”에 해당합니다.
희생 동물의 자격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희생 동물은 제사장이 성막이나 성전에서 드려지는 그런 희생 제물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먹는 고기는 절름발이든, 점박이이든, 색이 변색된 동물이든 흠이 없는 동물과 똑같이 맛이 있습니다. 귀가 갈라지거나 눈이 먼 동물의 고기도 맛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흠이 없어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영적 순결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아무 양이나 염소를 잡는다면 그들은 영적인 의미를 깊이 묵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흠 없는 희생 동물을 고르는 과정에서 경건한 마음을 갖고 기도하면서 유월절 예식을 섬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흠이 없는 어린 양은 죄에 대해 흠이 없고 순결하셔서 스스로 인류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상징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으로 단번에 자기를 드려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7:26). 우리가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벧전 1:19).
희생 동물의 두 번째 조건은 1년 된 것이어야 합니다. 1년된 것은 너무 미숙하거나 너무 나이가 들지 않은 나이이며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나이입니다. 또한 무슨 일에 사용되지 않아 순결하고 가장 살이 많이 찔 때이며, 고기 맛이 연하고 좋을 때로 극상품의 고기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요구하신 것은 영적인 의미를 강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순결한 마음과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자 하는 헌신의 마음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2:6-7
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들이 1년된 어린 양과 염소를 택한 후 그것을 14일 저녁까지 간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간직하도록 하신 것은 어린 양을 간직하면서 그들의 희생으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들을 따로 가두어 지켜야 했습니다. 어린 양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먹을 것을 가져야 주어야 하고 그들의 건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간직하라”는 말은 ‘따로 구별하여 돌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우리의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로 바쁘기 때문에 이 은혜를 묵상할 시간을 따로 구별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간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4일 저녁이 되면 이스라엘 회중은 그 양을 잡아야 합니다. 회중은 하나님의 백성 또는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신앙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회중”은 the whole assembly of the congregation of Israel(KJV; ESV; NASB95; RSV)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애굽 땅을 치실 때에 그 피가 표적이 되어 재앙을 면하게 됩니다(13). 이를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본래는 재앙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유월절 예식을 행할 때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죄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롬 3:10).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도 모두 다 죄인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합니다. 이를 행하지 않는 자는 멸망을 당합니다.
유월절 예식은 모든 회중이 행해야 하는 것으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지시에 대해 불만을 품는다거나 의심하는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사분란하게 이 일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히 11:28). 이스라엘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일을 행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믿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의 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서로 다 다르지만 그들이 믿는 신조는 하나이어야 합니다. 만일 다른 복음을 주장하거나 전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의 회중이 아닙니다.
“해 질 때”는 하루가 시작되는 때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해질 때로 정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루가 시작되는 저녁에 어린 양을 잡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히브리 원어를 보면 “해 질 때”는 ‘두 저녁 사이에’라는 뜻입니다. 즉 해가 지기 시작해서 어두워질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어린 양을 잡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일을 시작해서 어두워질 때에 일을 마쳤을 것입니다. 또한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일도 빛이 있을 때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후 3-5시 쯤에 이 일을 행하였을 것입니다. 그 후 어두워지면 가족들이 모여 유월절 잔치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모아두고 성만찬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만찬을 준비하는 시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을 잡는 그 시간과 일치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성만찬을 하시고 그 다음날(유대인의 시간 개념으로는 그 날) 새벽에 체포되시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급하게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을 잡을 때는 하루의 시작인 저녁에 행하였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시간적 개념으로 그 다음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로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하신 것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자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양의 피로 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사람이 속죄를 받으려면 피를 흘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입니다(레 17:11).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그 피로 그들의 죄가 대속되었고 그들은 죽음의 형벌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장자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얻은 것은 거저 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을 희생시킨 피의 대가로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은혜를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대속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자기 아들을 죽여 피를 흘린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면에서 애굽 사람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살아왔고 노예 근성이 몸에 배여 있는 백성입니다. 그들의 죄성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 애굽에서 섬기던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데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조금만 힘들면 불평하고 대적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도자 모세가 율법을 받으로 시내 산에 올라간 사이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이런 그들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구원을 얻었단 말입니까! 그들은 구원받을만한 꼬투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한 애굽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입어 구원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고자 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애굽의 압제와 노역으로 부르짖은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사랑과 자비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우리의 의로운 행동이나 선한 행실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십자가에서 고귀한 피를 흘리신 자기 몸 버려 희생하신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라는 말씀과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는 말씀을 굳게 붙들고 그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감으로 정결함을 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12:9-10
9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희생 제물을 먹을 때 주의 사항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날 것으로 먹거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신 데에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면 가고 머물라 하면 머무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습니다. 구름이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성막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은 머물러 있었고 구름이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습니다(민 9:15-23).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적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하심을 살피고 따라가야 합니다. 복잡한 생각을 가지면 따를 수 없습니다. 내 뜻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사야 55:8-9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이유를 말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과 그의 사랑에 기초해서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따를 때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음식은 남겨두면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남기는 것은 하나님께 부패한 것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이교도들도 자기들의 신들에게 희생을 바치고 난 후 그것을 나누어 먹었고 남으면 불에 태우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 부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2:12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열 번째 재앙은 밤중에 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 재앙은 모든 애굽 사람들과 짐승들에게 타격을 입힐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열 재앙의 대상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첫 번째 재앙은 나일 강을 주관하는 하피와 강의 근원의 수호자 크놈에 대한 심판이고 둘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은 개구리 형상을 한 다산을 주관하는 이집트의 여신에 대한 심판입니다. 세 번째 이 재앙은 애굽의 땅의 신 게브에 대한 심판이고 네 번째 파리 재앙은 풍뎅이 모양의 신인 ‘게프리’에 대한 심판입니다. 한편 다섯 번째 돌림병 재앙인 심한 돌림병 재앙은 황소의 형상을 한 아피스와 왕에게 젖을 먹이는 젖소의 형상을 한 하토르에 대한 심판입니다. 여섯 번째 악성 종기 재앙인 악성종기 재앙은 그들이 섬기는 질병의 수호자이면서 치료의 신인 ‘세라피스’와 ‘임호텝’에 대한 심판입니다.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 재앙은 하늘의 여신 ‘누트’를 겨냥한 것이었고, 또한 농작물을 주관하는 신인 이시스와 셋을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은 메뚜기 떼를 막는 신 세라피아(Serapia)와 폭풍과 농작물의 수호신 셋(Seth)을 겨냥하여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 재앙은 애굽의 태양과 관련된 신들, 즉 햇빛과 따뜻함을 제공함으로 곡식과 열매를 맺게 하는 태양신 레(Re)와 태양의 여신 호루스(Horus)와 하늘의 여신 누트(Nut)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열번 째 재앙인 장자 재앙은 애굽의 모든 신들을 겨냥한 가장 강력한 재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범신론에 기초하여 모든 살아있는 동물들과 자연들을 숭배했는데 하나님이 그 생명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치료의 여신 이시스(Isis)와 생명과 사망을 주관하는 오시리스(Osiris) 신은 이 상황에서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애굽 왕 바로도 그의 장자를 죽음으로부터 지키지 못했습니다. 애굽의 신들은 열 재앙 앞에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파멸되고 있다는 비명 소리조차 지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우상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2:13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어떻게 그들을 구원하게 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던 피가 그들을 위한 표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실 때 그 피를 보고 그들을 넘어가십니다. 이로써 그들은 재앙을 피하고 멸망당하지 않게 됩니다. 장자 재앙은 사람과 동물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장재 재앙은 애굽 사람이나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는 홍수 심판이 노아 시대 사람과 살아 있는 생물을 모두 다 휩쓴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피할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노아 시대는 구원의 방주를 짓도록 하셨고 심판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방주 안에 들어간 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애굽의 장자 재앙 때에는 어린 양의 피로 유월절 예식을 행한 집만 재앙을 피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를 볼 때 노아 시대의 심판이나 애굽에 대한 심판에서 구원의 길에 대한 공통점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따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노력과 의지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인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 길을 가는데 길이 험하여 백성들이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여 말했습니다.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 21:5). 이에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셨으므로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이에 모세가 간구하자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놋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민 21:8-9). 여기서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은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방주를 만들어 그 방주에 들어가는 것, 출애굽의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 광야에서 놋뱀을 달아 그것을 바라보는 것,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방주되신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광야에서 높이 달린 뱀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13절에서 어린 양의 피를 “표적”이라고 한 데에는 이것이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에 사용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십니다. ‘넘어간다’는 말은 pass over로 ‘지나간다, 간과한다’는 말입니다. 한자말로는 ‘넘을 유’와 ‘건널 월’로 ‘유월(逾越)’입니다. 로마서 3:25은 이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은 그의 성품상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여기에 언약 백성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심판을 면할 수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지은 죄를 어린 양에게 다 전가시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피를 볼 때에”라고 하심으로 어린 양의 피가 그들의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후에 율법에서 제사에 관한 규례가 주어졌을 때에도 이스라엘은 짐승의 피를 흘림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피의 속죄가 제도화된 것입니다. 이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구약의 희생제사는 때마다 드려야 하는 제사로 한계가 있습니다. 이 제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린 것의 모형에 불과합니다(히 8:5).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구약 시대의 성도들의 죄를 간과하심으로 그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로 장자 재앙의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장차 미래에 오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못보신 척 하시고 ‘간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길이 참고 계셨다가 그의 아들에게 그의 진노를 한꺼번에 다 쏟으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만족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어린 양의 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을 뚜렷이 계시한 복음입니다(엡 1:7; 벧전 1:19).
출애굽기 12:14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하나님은 유월절을 기념일로 지정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기념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리게 됩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경험한 세대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후손들을 위한 것입니다. 후손들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념일로 정하지 않으면 이 역사적인 사건을 잊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 후손들은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35:18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왕들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주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역대하 30:1-10을 보면 히스기야 왕도 유월절을 기록한 규례대로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정한 때에 지킬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는 히스기야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려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공포하여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 이는 기록한 규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
이를 볼 때 그만큼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쉽게 잊고 사는가를 역사를 통해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죄성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유월절을 기념하여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적 사건인 유월절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기억하고 기념함으로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영적인 출애굽을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영적인 출애굽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거룩한 삶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집인 영원한 약속의 땅에서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무교절을 지킬 것을 명령하심(12:15-20)
출애굽기 12:15
15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무교병은 누룩으로 부풀리지 않은 반죽으로 만든 빵을 말합니다. 유교병은 반죽을 포도주나 식초에 담근 후 밀폐된 용기에 보관하면 자연스럽게 발효가 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누룩을 넣은 빵인 유교병을 먹는데 이는 더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명령하시면서 무교병을 먹도록 하신 이유는 출애굽이 그 만큼 급박한 사건으로 유교병을 만들어 먹을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린 양의 고기를 삶아 먹지 않고 구워먹은 것도 급히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맛없고 딱딱한 무교병을 먹음으로 애굽의 고난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로 하신 것은 빵을 부풀리는 효모의 포자가 공기 중으로 떠돌아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룩은 죄의 영향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소제물을 드릴 때 누룩을 넣지 않도록 명령하셨습니다(레 2:11).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들의 죄의 영향력을 말합니다(마 16:6; 막 8:15).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룩을 철저히 차단함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함으로 무교절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는 것이 어떤 점에서 “이스라엘에서 끊어”져야 하는 무서운 처벌을 받아야 죄입니까? 이는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자 재앙 때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를 때 죽음의 사자가 그 문을 넘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순종함으로 믿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누룩을 제하고 무교병을 먹도록 하는 것도 그들이 무교절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기간 동안 죄를 상징하는 누룩을 제거함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표시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법적 조치라기보다 하나님의 저주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불순종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에서 단절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은 결과를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살더라도 그 백성에게 속하지 않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언약적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16-17
16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 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첫날과 일곱째 날을 각각 성회로 선포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추어야 합니다. “성회”는 거룩한 모임이라는 뜻으로 다른 날과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을 말합니다. 성회는 안식일, 월삭, 초막절 등에도 사용되었습니다(레 23:3; 레 23:24). 주 중에 일하는 것의 반대는 성회입니다. 우리는 매일 하는 규칙적인 일에서 벗어나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특별한 날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날을 위해 특별히 마음을 준비하고 이 날에 예배드리기 위한 행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무교절은 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 (NIV)로 ‘무교병을 먹는 축제’라는 뜻입니다. 이 날은 비록 맛이 없는 무교병을 먹는 날이지만 이 날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엄숙하게 절기를 지켜야 하되 축제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는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지켜야 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잊기 쉽습니다. 출애굽의 감동과 감격이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현실만 붙들고 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절기를 통해 그들은 출애굽의 구원의 은혜를 ‘억지로라도’ 상기해야 합니다. 절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훌륭한 방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절기를 지켰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우리 주님이 제정하신 성찬식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우리 주님이 명령하신 것으로 반드시 행해야 할 유일한 절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성도들이 안식일을 지켰듯이 우리는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주일성수’라고 해서 주일을 목숨과 같이 절대적으로 지켰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삶에서 영적 우선순위를 정해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선 순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이 후순위로 밀려날 것입니다. 십일조도 물질 생활에서 영적 질서를 지키는 훌륭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가 있게 마련입니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 물질의 청지기임을 고백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신앙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아침에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하는 시간(Devotional)을 갖습니다. 이는 하루의 처음을 드리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 뿐 아니라 매일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롬 12: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너희 군대”라고 지칭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전쟁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잘 조직된 군대가 전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군대”라 칭하셨습니다(6:26; 7:4).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것은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군대로 애굽 사람을 굴복시키고 당당하게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의 종살이하였던 노예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군대로 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를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온 애굽 땅과 주변국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군대로 명성을 떨치게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타고난 전사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를 병사로 비유했습니다(딤후 2:3). 우리는 하나님의 병사로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아니라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 일에 모집된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만일 병사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사령관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름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군인의 제복은 그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그 사람을 용맹한 모습으로 비추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군인의 제복을 입히심으로 세상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앞장 서셔서 원수들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며 그 승리의 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불리는 것은 애굽 사람과 세상 사람에 대해 당당한 모습으로 비추게 되어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출애굽기 12:18-20
18 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19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20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유월절은 첫째 달, 즉 아빕월 14일이고 15일부터 21일까지가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무교병을 먹는 절기로 7일간입니다. 무교병은 “고난의 떡”이라고 불리며 그들은 평생 애굽 땅에서의 고난과 그 가운데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한 음식입니다. 이는 애굽의 속박에서 자유과 구원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상징하듯이 무교병은 생명의 떡 예수님을 상징합니다(요 6:35).
무교절에는 누룩이 집에 발견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15절에서는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고 하였고 19절에는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종합할 때 첫째 날 대대적으로 청소하는 작업을 해야 했고 나머지 날 동안 그 청결이 유지되도록 힘쓰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룩이 발견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 일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막론하고 다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만일 누룩으로 만든 유교물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질 것입니다. “끊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언약에서 제외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불순종할 때 생명과 구원의 약속에서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19-20절은 율법은 혈통적, 공간적, 지리적 제한이 없음을 말해 줍니다. 19절은 율법이 혈통적 제한을 두지 않음을 말해주고 20절은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라는 말을 볼 때 공간적, 지리적 제한이 없음을 말해줍니다. 외국인라도 율법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다면 그들을 이스라엘의 공동체에서 배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첫 유월절을 행함(12:21-28)
출애굽기 12:21-22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12:1-20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따라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전달합니다. 장로는 나이 많은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 급에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모세의 말을 듣고 그들이 다스리는 가족들이나 이웃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전달한 내용은 축약해서 기록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면서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를 때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긴 피에 적시도록 구체적으로 지시했습니다. 우슬초(hyssop)는 줄기와 잎사귀에 털이 촘촘하여 솔이나 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불그스레한 꽃과 잎에서 풍기는 향기 때문에 약효가 있는 식물로 여겨졌습니다. 우슬초 독특한 향 때문에 약효가 있어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정결 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민 19:6; 레 14:19; 민 19:18-19). 또한 우슬초는 죄 사함을 위한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였으며 다윗은 그의 간음 죄를 회개하면서 우슬초로 정결케 해 달라고 눈물로 간구하였습니다(시 51: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은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 줄기에 달아 예수님께 건네주기도 했습니다(요 19:29). 본문의 때는 장자 재앙이 있기 바로 전으로 구원과 심판을 가르는 매우 엄숙한 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피가 담긴 그릇에 사용할 도구로 정결과 죄 사함을 상징하는 식물인 우슬초를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는 유월절 예식을 행할 때 양의 피를 문에 바른 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그 어떤 호기심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멸하는 자의 행로를 방해하지 말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지나가시는 것이지 사람을 보고 지나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나 자격 요건을 보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사람의 생명을 대속할 능력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2:23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12절에서는 “내가 …다 치고 … 심판하리라”고 하셨지만 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 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여 “여호와”와 “멸하는 자”를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애굽에서 일어난 장자 재앙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재앙으로 그들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유월절 예식을 행한 이스라엘이 장자 재앙을 피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지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바이러스가 어떤 지역을 덮치고 어떤 지역은 덮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장자 재앙을 자연 현상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을 치시고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12), 넘어가시고 치지 못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23). “멸하는 자”는 주의 천사일 수 있으며(삼하 24:16; 사 37:36), 하나님께서 천사의 형태로 나타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로 유월절 예식을 치른 자들을 아끼십니다. 여기에는 이방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19).
출애굽기 12:24-28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모세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규례로 삼아 이스라엘과 그들 자손이 영원히 지키고 기념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26-28절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인지, 모세가 덧붙여 강조하는 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1-20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모세는 이 규례가 그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도 잊지 않고 지켜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자녀들은 유월절 예식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것입니다. 그들이 그 뜻을 묻거든 그들은 이 예식이 “유월절 제사”이며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여기서 유대인의 문답식 교육 방법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이 어떤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도록 유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유대인처럼 문답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의 의미를 세대를 넘어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역사 교육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구속사적인 뜻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의미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십자가 대속까지 이어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하나도 놓치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메시아에 대한 계시는 점점 시간이 갈수록 구체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에 덧붙여서 가르쳐야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신약의 모든 구속 역사의 틀은 바로 출애굽의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월절 어린 양의 사건과 출애굽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출애굽과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그림자요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정과 교회에서 행해지는 신앙 교육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앙은 나 한 사람 당대로 끝나면 안됩니다. 나 한 사람 구원받고 축복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참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나의 후손과 미래 세대를 향해야 합니다. 미래 세대의 신앙 교육을 위한 기도와 주일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연구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항상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목회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교회에 맡겨두는 것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자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성경과 신학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들이 성경은 지루한 것이고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집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성경을 들으면 하품을 하고 몸을 비틀며 억지로 할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는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덧입어서 자녀에게 성경을 체계적이고 재미 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기독교 자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해야 합니다. 일단 모든 믿는 자들은 자립적인 성경 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잘 모른다면 부끄러워해야 하고 회개할 문제입니다.
우리는 교육은 교육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의존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가정 교육을 가정이 아닌 다른 기관에게 맡기는 것으로 이는 가정교육이 아닙니다. 부모의 삶은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성경에 기초해서 형성될 때 그 가정은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 가정과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교회의 주일학교는 교회 공동체 형성에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될 때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고 교육의 영향력이 다음 세대로 전달됩니다. 그러나 성경 가르치기를 경시할 때 자녀들은 교회를 떠나고 방황하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전달하자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였습니다. 여기서 장로들이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아마 장로들이 자기 가족이나 그가 다스리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머리를 숙여 경배했습니다. 이는 순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물러가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들이 일사분란하게 이 일을 행한 것은 기적입니다. 백성 중 한 사람도 이에 토를 달고 반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절실하였습니다. 애굽의 지긋지긋하고 비참한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자 하는 소원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들은 잔인하고 처절한 노예 생활 동안 울부짖으며 기도하면서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시고 구원자 모세를 보내 주셨습니다(2:24-25).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세를 통해 구원의 표적을 보여 주셨고 그간 아홉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재앙이 임박했다는 것과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며 유월절 예식을 행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들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히 11:28). 그들의 순종은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행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애굽에 임한 장자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군대처럼 당당하게 애굽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열째 재앙: 처음 난 것을 치심(12:29-36)
출애굽기 12:29-30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여호와께서는 밤중에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셨습니다. 이 끔찍한 일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후 모세에게 그가 바로에게 가서 전해야 할 말의 개요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4:22-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 전 바로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11:5-6).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끔찍한 장자 재앙이 온 애굽을 덮쳤습니다. 바로는 산파를 통해 히브리 여인이 해산을 도울 때에 아들이 태어나거든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산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남자 아기를 살림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1:16). 바로는 더 끔찍한 학살 명령을 하였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1:22). 하나님은 바로가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를 죽인 대가로 바로의 장자를 비롯해 애굽의 장자와 짐승의 처음 난 것까지 치심으로 당한 대로 갚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으로 사람의 죄를 눈감지 않으시고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악인이 당장 심판을 받지 않고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대로 다 갚으십니다. 우리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심판의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는데 왜 심판하시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없을 때 세상에 정의가 바로 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죄를 짓고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며 함부로 살 것입니다. 실제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해도 괜찮은 것 같고 오히려 일이 더 잘되는 것 같이 느낍니다. 그들은 정직하게 살면 세상에서 패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경쟁 사회에서 이기고 보자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악행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님의 심판의 게이지가 한계점에 이를 때 하나님께서 진노를 쏟아 부으실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애굽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자 재앙을 당한 애굽 사람의 입장에서 소설을 씀으로 하나님의 잔인성을 부각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을 어떻게 잔인하게 억압했고 심지어 인종 학살에 가담했던 천인공노할 악행을 간과합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처벌은 당연한 죄의 대가로 여길 것입니다.
장자 재앙이 임하자 사람들은 죽은 아이들을 발견하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집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나자 이웃 집의 사람도 자기의 장자가죽은 것을 알고 이어서 통곡했습니다. 이렇게 통곡 소리는 일파만파로 애굽 전역에 퍼져갔습니다. 여기서 부르짖음은 히브리 원어로 ‘세아카’로 속박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과 같은 단어입니다(3:7, 9). 하나님은 애굽의 억압과 속박 아래 부르짖던 소리가 이제 애굽 사람들의 부르짖음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가축의 처음 난 것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강제 노역을 시켜 얻은 부를 도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함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심판받을 자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도 홍수로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그 심판의 철저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 7:22).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예비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습니다(창 7:23).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도 예외가 있었는데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 그들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며 유월절 예식을 행한 자들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죽음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죽음 뿐만 아니라 둘째 사망을 받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표적으로 삼으시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우습게 여기고 거절하는 자에게는 이미 심판이 작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여 그의 심판 가운데에서 살아남을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인데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계 21:8).
출애굽기 12:31-33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바로는 자기의 장자가 죽은 것 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백성들의 통곡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신하를 통해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그가 보고를 들은 순간 결국 모세의 말대로 애굽의 모든 장자와 짐승의 처음 난 것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바로가 장자를 잃은 것은 그의 모든 것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기를 머뭇거리다가는 온 백성이 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모세와 아론을 즉시 불러들이도록 했습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한밤중이었습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항복 선언을 했습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결국 그는 모세와 아론이 요구한 대로 다 들어 주었습니다.
그가 한두 번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굴복하고 그들을 내보냈더라면 이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의 완고함 때문에 나라를 망쳤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자 그가 고집을 부린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바로는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 재앙을 겪고 나서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10:24). 그는 다 양보했지만 가축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재앙을 겪고나자 짐승까지 다 양보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가 모세에게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그가 자기 목숨을 구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맏아들이자 왕국의 상속자가 죽은 것을 보았을 때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이 자기 목숨을 향할 것이라고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가 죽으면 그의 왕위는 끊기고 다른 왕국에 권력을 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는 말은 그가 자기의 왕위가 이어지도록 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바람과 달리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가다가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14:27-28).
33절은 애굽 사람들의 항복 선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애굽 사람의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한 것도 그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축의 처음 난 것도 다 잃었습니다. 애굽 백성들은 그들의 가족의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잃은 사건을 통해 장자 재앙이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예고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머물면 그들이 다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존재 자체가 재앙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를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온 것은 도망치듯 탈출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군대로 인정을 받고 승리하여 당당하게 애굽을 나온 것입니다(17).
출애굽기 12:34
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백성들은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었습니다. “발교되지 못한 반죽”은 발효되기 전의 반죽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은 이것으로 무교병을 만들어 먹을 것입니다. 반죽을 담은 그릇을 싼 옷은 겉옷을 말하는 것으로 밤에는 덮고 잘 수 있는 담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옷은 반죽 그릇을 어깨에 매고 가기 위한 용도로 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날 때 모세의 말대로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애굽을 떠난 사람의 숫자가 장정만 60만이었기 때문에 실제 인구는 적어도 2백만 명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수 개월을 지내야 하기 때문에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고 이에 합당한 도구도 구입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430년간 노예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형편을 아시고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달라고 하도록 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순순히 그들의 값진 것을 내줄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물품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은 놀랍게도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한 것은 정당한 그들의 권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노동력으로 부를 누려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사람의 값비싼 물품을 취한 것은 그들의 희생의 대가를 도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 사람들에게 신 같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7:1). 또한 장자 재앙을 예고하시면서 그들의 은금 패물을 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모세가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1:3).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목적은 모세의 반복되는 메시지인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7:5,17; 14:14,18)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애굽 사람의 눈에 이스라엘 백성은 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모세의 백성이며 열 재앙을 내린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라는 말씀을 성취하는 것입니다(창 15:14).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12:37-42)
출애굽기 12:37-39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39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37절은 출애굽의 여행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의 수는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60만이었습니다. 장정은 전쟁에 나가 싸울만한 남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민수기에서는 603, 550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민 1:46). 여기에는 레위인들이 포함되어 않았습니다(민 1:47). 이 숫자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4로 볼 때 어린 아이와 여자들의 숫자까지 더한다면 약 200만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했을 때 숫자가 70명이었는데 430년만에 엄청난 민족이 된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큰 민족으로 성장한 데에는 이민족의 침입이 전혀 없었고 땅이 비옥한 고센 지역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정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애굽 사람들이 그들의 값비싼 물품을 주면서까지 나가도록 재촉할 정도로 그들은 당당하게 애굽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외국인 신분으로 지냈고 요셉을 모르는 새로운 왕조의 등장 이후 노예로 전락해 압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노예 신분이 아니라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자유를 얻었을 때의 그 감격과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그들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춤을 추며 노래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이르렀습니다. “라암셋”(Rameses)은 히브리어 발음으로 ‘라암세스’인데, ‘레(Re, 애굽의 태양신)를 낳았다’는 뜻입니다. 이 곳은 카이로 북방 120km 지점의 애굽 북쪽 국경 지대의 성읍으로 팔레스타인 남부 지역과 가깝습니다. ‘고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혹은 고센은 지역 이름이고 라암셋은 성읍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 성읍은 라암세스 2세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그는 이곳에 국고성을 짓고 요새화하였습니다(출 1:11). “숙곳”은 홍해에 못미친 비돔 인근 지역을 말합니다. 야곱이 에서와 재회 후 가축을 위한 우릿간을 지은 곳도 숙곳인데 이 곳은 다른 지역입니다(창 33:17; 수 13:27).
우리가 주목할 것은 출애굽한 사람들 중 “잡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혈통적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 거주하는 다른 민족을 말합니다. 이를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은 혈통적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선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거주하며 믿음으로 유월절 예식을 행했던 사람들로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하신 기준은 혈통을 보신 것이 아니라 문설주와 인방의 피를 보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빈 손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을 데리고 나왔고 애굽 사람의 귀중품까지 챙겨 나왔습니다. 가축들은 애굽의 바로가 아홉 번째 재앙까지 겪으면서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는 수많은 가축이 애굽에게 엄청난 경제적 자산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만 약속의 땅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경제적 자산까지도 이주하였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가축들은 광야에서 희생 제사에 드려졌습니다(20:30).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것으로 발교되지 못한 반죽을 그릇에 담아 겉옷으로 싸서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34).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유월절 예식을 치른 후 7일간 무교절을 지키며 무교병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적 정결을 목적으로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출애굽이라는 급박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유교병을 만들어 먹고 각종 음식을 요리하였다면 그들의 출애굽은 지체되었을 것입니다.
39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는 것을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의 구원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의 구원의 열차에 탑승하는 것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미련을 두거나 지체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차 시간은 이미 정해졌으며 구원의 열차는 지체하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 역사가 보이지 않는 사탄과의 전쟁이므로 전쟁의 치열함과 긴박함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뒤에 두고 온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지체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기억해야 합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면 그들은 지체하게 됩니다. 구원은 과거의 비참한 생활과의 과감한 결별을 할 때 이루어집니다. 뒤돌아 보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오직 앞만을 향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리 레위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레위가 세리로서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산 결과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공허하고 외로운 삶을 과거하게 떨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을 기억하고 과감하게 죄악의 삶에서 나와야 합니다.
출애굽기 12:40-42
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이스라엘이 430년간 애굽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애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했을 때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로의 특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을 7년 간의 대가뭄에서 구원한 애굽의 영웅이었습니다. 요셉이 죽은 후에도 애굽의 왕들은 그의 명성을 기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 대우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특별 보호 아래 큰 민족으로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430년이라는 기간 내내 고난받고 억압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억압받는 노예가 된 것은 요셉을 모르는 왕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이는 애굽에 새로운 왕조가 등장했음을 말해줍니다. 신왕조의 왕들은 그 이전 왕조의 업적을 갈아 엎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영웅 요셉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번성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고난을 받은 기간은 모세가 태어나기 20년 전부터 시작하여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나이 80년을 합하면 100년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100여년 노예 생활을 겪게 하심으로 애굽을 탈출하고자 하는 소원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만일 이 고난의 기간이 없었다면 전격적인 출애굽 작전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비옥한 토지와 이민족의 침입이 없는 안전한 땅에서 애굽의 선진문물을 누리는 것을 포기하고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유월절 예식을 행하고 한 마음으로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 것은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억압의 땅을 나가고자 하는 소원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출애굽의 감격적인 순간을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겉모습은 비록 노예 백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당당한 “여호와의 군대”의 모습이었습니다. 42절 후반절은 우리말로 “… 지킬 것이니라”라는 명령형으로 되어있지만 KJV에서는 this is that night of the LORD to be observed로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켜야 할 여호와의 밤이니라’라고 번역함으로 결론적이고 선언적이며 서사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날밤은 이스라엘 백성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감격과 환희의 밤이었습니다.
유월절에 참여하는 사람의 자격(12:43-51)
출애굽기 12:43-45
4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44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5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
43-45절은 유월절에 참여하는 사람의 자격에 대한 설명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참여할 수 있지만 거류인과 타국 품꾼, 즉 외국인은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혈통적으로 외국인 중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즉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유월절 예식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족보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 참여가 배제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유월절 예식에 참여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언약 백성의 표시입니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더라도 할례를 행한 사람은 언약 백성에 속함을 나타냅니다.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엄밀히 말하면 외국인이 아니라 외부인입니다. 그들은 할례를 행하지 않은 사람으로 단지 잠시 방문한 사람이거나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사람으로 분명 타종교를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먹을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유월절을 먹는 자는 할례를 행한 언약 백성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우리는 혈통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는 할례를 받은 사람, 즉 혈통적으로 유대인은 물론이고 종이나 그들 가운데 거하는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할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유월절을 먹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언약 공동체 내에 들어와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공동체의 분위기를 흐리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12:46-47
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47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유월절은 여러 가족이 먹더라도 한 집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자 재앙을 내리시기 전 유월절을 먹을 때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어린 양을 계산하도록 하셨습니다(12:3-4). 여러 가족이 어린 양 한 마리를 먹을 경우 한 집에 모여 먹어야 하며 그 고기를 결코 집 밖으로 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어린 양의 피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음식을 밖으로 가져 가는 것이 허락된다면 각자 자기 집에서 먹거나 심지어 밖에서 혼자서 먹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격 없는 자가 유월절을 먹어도 이를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습니다.
이를 볼 때 교회는 각자 자기 마음대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여 공동체 의식을 갖고 신앙의 교제를 나누는 곳이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편하게 설교 영상을 듣고 개인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뿔뿔히 흩어질 때 영적으로 힘들어져도 그의 문제를 파악할 수 없고 또 붙들어 줄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보면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을 믿사옵나이다”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동정녀 탄생을 믿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 뿐만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의 교제와 같이 성도의 교제를 믿는 것이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입니다.
유월절 규례 중 또 다른 세부 규정은 뼈를 꺽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뼈를 자신의 분신이나 전인격과 동일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뼈를 취하셔서 여자를 만드셨고 아담은 하와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라고 말하며 사랑 고백을 하였습니다(창 2:23). 또한 유대인들은 동족이나 친척을 “내 골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창 29:14; 롬 9:3, 11:14). 그들은 뼈를 무덤으로 옮기는 것을 죽은 자를 존중하는 일로 여겼습니다(출 13:19; 수 24:32). 반면 무덤에서 뼈를 꺼내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습니다(렘 8:1; 암 2:1).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염두해 두시고 그 뼈를 꺽지 않도록 하심으로 어린 양의 희생을 모독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그 뼈가 하나도 꺽이지 않으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시 34:20).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그 뼈가 하나도 꺽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좌우에 못 박힌 강도들은 다리가 꺽였지만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이후였기 때문에 그 다리가 꺽이지 않으셨습니다(요 19:32-33).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뼈가 꺽이지 않으신 것은 그의 몸이 상징하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분열되거나 꺽이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우리는 어린 양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뼈를 꺽는 것을 금기시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꺽는 행위로 여기셨기 때문인 것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2:48-51
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49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50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으며 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하나님께서는 48-49절에서 유월절 먹는 일에 참여할 자의 자격에 대해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이 자격을 반복해서 언급함으로 강조하신 것은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연합과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잔치에 참여할 자에게 혈통적 자격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언약적 자격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타국인이라도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공동체는 혈통을 초월한 공동체이고 매우 개방적임을 시사하셨습니다. 반면 할례를 받게 하심으로 언약 맹세를 한 자로 그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심으로 언약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키도록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라는 선포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된 이방인들에게는 큰 은혜입니다. 할례는 언약의 표시로 신약에서는 세례로 대체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 포도주 잔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2:20). 누구든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은 예수님의 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
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대로 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로 연합되었습니다. 그들이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무리대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무리대로”라는 말은 KJV을 보면 by their armies(그들의 군대대로)로 군인들처럼 많은 수가 질서 있게 단위를 이루어 행군하듯이 애굽을 나왔다는 뜻입니다.
무교절의 의의(13:1-10)
출애굽기 13:1-2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도록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난 것을 드리라는 내용은 12절에서도 반복됩니다. 그런데 2절에서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았지만 12절에서는 수컷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명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가축의 초태생은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는데(민 18:17), 그중에 부정한 짐승으로 간주된 나귀의 경우 양으로 대속하거나 목을 꺾어야 했습니다(출 13:12-13). 사람의 경우에 맏아들을 하나님께 직접 드리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한나가 서원 기도로 낳은 아들인 사무엘을 젖을 뗀 후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린 경우가 직접 드린 경우입니다(삼상 1:11). 대부분의 경우 첫 아들은 레위인으로 대신(대속, 속량)해야 했습니다(민 3:12).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가 레위인보다 더 많았으므로 성소의 세겔로 은 다섯 세겔의 생명의 속전을 바쳐 대속했습니다(민 3:46-50; 18:15-16). 그들은 장자를 대속하면서 애굽에서 장자 재앙을 면하게 해주시고 생명을 도로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는 애굽의 장자와 같이 멸망의 대상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반면 어린 양의 피로 장자 재앙을 피할 길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상식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의 성품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속이라는 방법으로 이 둘을 조화시키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잘 조화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공의가 강조되면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서 3:23은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반면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의 성품을 가시진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멸망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동물의 피를 흘려 대속함으로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율법을 주신 후에는 성막과 성전에서 그들의 죄를 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동물 희생제사는 한계가 있습니다. 매 번 드려야 하고 장소도 하나님 정하신 예루살렘 성전에 국한되었습니다.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히 9:23-24).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히 10:20).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는 시간적, 장소적 한계를 넘어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성품을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는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처음 난 것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거룩히 구별하여 드림으로 장자 재앙 가운데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살아야 마땅합니다.
출애굽기 13:3
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모세는 백성에게 그들이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날을 기념할 수 있습니까? 이는 유교병을 먹지 말고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3절은 12:18-19의 반복입니다. 그들은 “고난의 떡”을 먹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신 16:3).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 곳에서”는 애굽의 종살이 했던 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독재 권력의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 상태에서 건져내셔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애굽의 노예 생활의 비참함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난을 기억하며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움 속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자유의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자유의 가치를 알려면 노예 생활의 비참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에서 방황하며 죄의 세력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구원과 자유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누리는 자유와 풍요의 가치를 잘 몰랐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그것이 자유인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죄의 노예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신 자유를 남용하였고 한없이 추락하여 나중에는 돼지 먹는 쥐엄열매조차 먹을 수 없는 비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아버지를 떠난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깨닫고 동시 아버지 집의 풍요와 자유의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죄의 노예된 삶의 비참함과 “그 곳에서” 건지시고 인도하신 은혜를 기념하여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의 떡인 무교병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을 말합니다(딤후 1:3). 그를 기념하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기억하고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우리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일입니다(벧전 2:9).
출애굽기 13:4-6
4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5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6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아빕”은 ‘곡식 이삭’ 또는 ‘봄’을 의미하는 집합 명사입니다. 아빕월은 이스라엘 달력으로 7월이고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는데, 바벨론 이후에는 ‘니산월’로 불렸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이 있는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삼도록 말씀하셨습니다(출 12:2).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이 있는 달을 첫 달로 삼아 그들의 삶의 첫 출발로 삼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할 때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경건의 시간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하루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주일은 한 주의 첫 날로 거룩하게 지킴으로 나의 삶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 월급을 통째로 헌금으로 드리는 헌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경건 생활을 위해 매우 유익합니다. 각자가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께 처음 것을 드림으로 우리는 좀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다시금 약속의 땅에 소망을 심습니다. 3:17에서는 여섯 족속으로 언급했지만, 여기서는 다섯 족속을 언급했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려고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창 17:7, 21),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이를 때에 무교병을 먹으며 무교절을 지켜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풍요로운 땅입니다. 그들은 몇 달이 지나면 약속의 땅에 이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40년 후의 일이고 약속의 땅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복 전쟁을 벌임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디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그의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약속에 땅에 들어간 사람들은 2세대들입니다. 1세대들은 대부분 40년 간의 광야 생활 중에 죽었습니다. 2세대들은 출애굽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잊기 쉬웠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교절 예식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13:7-8
7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 8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
7절은 12:15, 19에 이어서 세 번째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그들의 자녀들에게 무교절 예식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올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하도록 했습니다. 모세는 이 말을 할 때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이라고 1인칭 주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서 1인칭은 모세를 의미하지 않고 유월절과 무교절 예식을 행하는 각 사람을 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사실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등장 인물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이를 ‘나’에게 적용하여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모세가 이른 말은 출애굽 2세대들이 비록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역사 교육을 통해 배운 바대로 하나님께서 그들 각 사람을 위해 행하신 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들은 애굽에 살던 경험이 없었지만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건져내신 것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4장에서 2세대들에게 그들이 광야에서 태어나 광야에서 자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애굽에서 자라 출애굽을 경험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사건을 마치 현재 이루어진 것처럼 영접합니다. 우리는 부활절 전 고난주간을 기념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에 입성, 가룟 유다의 배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제자들과의 성만찬, 체포당하심, 재판을 받으심,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심, 십자가에 못 박히심, 무덤에 묻히심, 다시 사심 등을 생생하게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내가’ 이를 목격한 것처럼 여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2천년 전의 사건이지만 마치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것처럼 여김으로 제자들의 경험을 동일시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사건을 마치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동일시하면서 그의 구원의 사랑과 은혜를 기념하고 기억하며 우리 삶 속에 녹여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3:9-10
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0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절 예식을 그들의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로 삼고 여호와의 율법을 그들의 입에 있게 해야 합니다. 손목과 미간은 신체 부위 가운데 중요한 두 기능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 즉 두 눈 사이에 말씀을 달아 매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입에 있게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실제 삶에서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면 눈을 뜨면 항상 기호와 표가 보였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율법을 입에 있게 하는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은 시대에 입으로 외워 중얼거렸는데, 그들은 이 방식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8일간의 유월절과 무교절을 보내면서 이 규례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개신교에서도 주요 절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통해 예수님의 성육신의 은혜를, 부활절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승리를, 추수감사절을 통해 한 해를 정리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념하고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절기를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하고 기념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절기를 지키는 것이 형식적이고 행사를 치르는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항상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받아들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처음 난 것의 대속(13:11-16)
출애굽기 13:11-13
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11-13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해야 할 의무에 관한 것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광야 생활 40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이라고 하면서 가나안 생활을 언급하였습니다. 광야 생활은 하나님께서 항상 친히 임재하신 기간입니다. 매일 만나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샘물을 내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께서 떠나신 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양식이 내린 것이 아니라 땅이 그 소산을 내고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처럼 강이 흐르고 있어 반석에서 샘물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광야에서 떠돌아 다니는 대신 지파별로 분배받은 땅에 거주하기 때문에 불 기둥과 구름 기둥도 필요 없게 됩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의 풍요를 누리면서 하나님을 잊기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초태생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릴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초태생에 대한 명령은 13:2에도 나오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고 13:11-13은 모세가 백성에게 전한 메시지입니다.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은 염소 새끼, 어린 양, 소와 같이 먹을 수 있는 동물의 수컷과 당나귀와 같이 짐을 나르거나 일을 시키기 위한 기르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은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고 어린 양으로 대속할 수 없다면 그 목을 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원칙은 처음 난 것은 그것이 먹을 수 있는 짐승이든지 먹을 수 없는 짐승이든지 구별하지 않고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먹을 수 없는 짐승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었으므로 어린 양으로 대신하여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먹을 수 없는 짐승이라고 자기를 위해 사용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처음 난 것은 십일조 생활과 주일 예배일 것입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십일조이고 내가 가진 생명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주일 예배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과 관련하여 타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좀 봐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씩 이 정도 쯤은 괜찮겠지 하면서 예외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부담스러워집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부정한 짐승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부를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그들은 처음 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출애굽기 13:14-16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14-16절은 12:26-28을 반복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손들에게 교육해야 할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호기심이 많습니다. 어른들은 이런 점에서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은 자녀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그들의 질문을 이끌어냅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것이 어찌 됨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조상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애굽의 종살이 했던 역사는 마음 아픈 역사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드러난 감동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과거 노예의 신분이었던 것을 기억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동시에 이제는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자녀들에게 깨닫게 해야 할 것은 주의 백성을 보내지 않으려는 바로의 완악함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을 섬길 때 그들은 또 다른 바로의 종이 되어 그의 완악함을 경험할 것임을 경고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완악한 폭군의 종으로 다시 살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임을 자처하는 것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의 크신 권능으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신 역사를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이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을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도록 해야 합니다. 초태생을 드리는 것은 그들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로 삼아야 합니다. 14-16절에서 “그 손의 권능으로”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손의 권능으로 이루신 역사입니다. 그들이 얻은 자유와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된 것으로 그들이 얻은 구원과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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